[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흔히들 '정신질환' 하면 마음의 병, 불안과 우울, 폐쇄병동, 묻지마 범죄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일부 사람들은 정신질환이 개인의 정신력이나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오해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을 것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자는 모두 다 비정상적이거나 폭력적일 것이라는 편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정신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의 한 종류다. 뇌의 구조나 활동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병으로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주요 정신질환에는 우울증, 불안장애, 양극성 장애, 조현병,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등이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유병률을 보인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7.7%, 불안장애는 9.3% 정도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은 곁에 있는 가족들을 힘들게 한다. 환자의 상태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정신질환자 가족이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 결과는 환자의 자살인데 정신질환자는 일반 사람들보다 자살 위험이 현저히 높아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5년째 조현병 자녀를 돌보는 장 씨 “아들이 눈앞에서 무너질 때, 가족인 나도 같이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며 “투약 기록표와 감정일기를 함께 쓰며 재발 징후를 잡는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자 상담으로 ‘내 삶’도 챙겨야 마라톤 돌봄을 버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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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창비] |
김현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저서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를 통해 딸의 정신질환 진단 이후 치열하게 펼쳐진 7년간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을 담담하게 전하면서 의대 교수이자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딸을 둔 엄마로서 자신과 같은 힘듦을 겪고 있을 정신질환자 가족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정신질환이 여느 신체 질환과 다를 바 없음을 설명하고 편견과 낙인으로 괴로워하는 정신질환자와 가족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어내면서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둘째 딸은 대학을 다니던 시절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았다. 양극성 장애는 조증과 우울증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으로 1형과 2형의 특징을 명확하게 지니지 않는 환자를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로 분류한다. 서구에서 양극성 장애의 유병률은 1~2%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 기준 0.2%로 보고되고 있는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이며 특히 30세 미만의 연령대에서 증가율이 높게 나타난다.
이 사건은 김 교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계기가 된다. 진단 이후 7년간 딸은 반복되는 자해와 불안 장애, 약물 오남용 등의 증상으로 보호 병동에 16번 입원했다. 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대답뿐, 응급실에서는 딸아이의 자살 충동이 위급하니 보호자가 와야 한다는 전화가 툭하면 걸려왔다. 자녀의 정신질환을 마주한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딸아이의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삶을 저주하기도 하고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며 끝없는 비탄에 빠지기도 했으며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가슴이 수없이 찢기고 베어져 나가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삶의 어떤 비극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한 보호막이 조금씩 생겨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을 받기 전까지 딸에게 아무런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는 수능 며칠 전 느닷없이 학교에 결석했고 집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는데 그때는 단지 수능을 앞둔 고3 아이의 불안감 때문에 급성 우울증이 생긴 것이라 여기고 넘어갔다. 한참 후에야 김 교수는 그날 아이가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씩 어두운 안색을 비췄으나 가볍게 넘겼다. 아이가 방문한 정신의학과에 불려 가서도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아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이의 자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 날 그제야 아이의 병이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때부터 시작된 아이의 치료 과정과 그 과정을 옆에서 함께하는 가족, 특히 엄마의 이야기는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먹먹함을 남긴다. 의사인 엄마는 딸의 자해가 자살이 목적이 아님을 알고 팔에서 동맥이나 인대가 가깝게 지나가는 부위가 어디인지를 가르쳐 줬고 자해 행위의 불합리성과 함께 죽음의 불가역성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자해에 동원될 수 있는 수단을 최대한 봉쇄했다.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대화를 통해 딸의 행동을 이해하고 아이를 다독여주려 노력했다.
이 책은 정신질환자 가족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그 외 가족에게는 정신질환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특히 정서적으로 불안한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한편 정신적인 어려움과 관련해 도움이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정보포털’(mentalhealth.go.kr)을 통해 가까운 정신건강복지센터 위치를 찾을 수 있으며, 정신건강정보포털,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가족교육‘FamilyLink’(ncmh.go.kr)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볼 수 있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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