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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채(시인, 문학박사) |
[맘스커리어 = 류인채 시인] 환절기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이다.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심하고 황사 바람이 분다. 안개가 자욱하고 바이러스 질환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2019년 겨울에 시작하여 이듬해 환절기 때부터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는 수년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무렵 남편이 정년퇴직을 했고, 나도 대학 강의를 거의 내려놓았다. 생의 전환점에서 다음 계절을 어떻게 맞이할까 고민하다가 방치했던 고향 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집 수리가 끝나갈 즈음 마당 가에 네덜란드 사계 장미를 심었다. 초겨울까지 연달아 예쁜 꽃을 피워 그것을 관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고 살얼음이 얼자 꽃잎이 시들었다. 가느다란 가지가 맨몸으로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서 왜 딸이 보였을까. 마침 「자녀의 비자살적 자해에 대한 아버지 대처 내러티브 탐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둘째 딸 한나가 심리적, 생리적으로 지쳐 번아웃(burnout)이 된 상태였다.
사춘기 무렵부터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동안에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딸이다. 돌아보니 부모가 자녀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려주지 못한 데서 비롯된 아픔도 있어 애처롭다. 인간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입학을 권유한 대학원에서 딸은 제 길을 찾았다. 하지만 가족 상담을 전공하고 심리상담사가 되기까지 “맨몸으로 가시를 세우고/ 추위 속에 서야” 했던 수많은 순간들을 어미가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위기 청소년을 살리는 일을 하여 대견하지만, 어미로서 이 또한 짠하다. 정작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더 큰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자식처럼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환절기를 만나 막막해하는 “핏빛 장미 한 송이”에게 “제 속에 있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곰곰 생각해야 할 때”라고 권면한다. 환절기와 사계절을 주관하는 이는 바로 천지를 창조한 이가 아니던가. 살면서 환절기를 만난 듯 힘들고 우울할 때 침묵하며 묵상하다 보면 우리 안의 “내비게이션”인 그 음성이 피조물을 바른길로 인도한다. “그 속의 한 음성을 따라/ 너의 계절로 가야 하네”라고 한 것은 딸이 모태에서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씀, 고난의 때에 평안하게 하고 지혜로 이끄는 음성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어미의 간절한 당부이다.
환절기는 잠깐 지나는 과정이다. 그동안 “맨몸으로 가시를 세우고/ 추위 속에 서” 있었다 해도 잠잠히 묵상하며 제 안의 “한 음성”에 집중하면 곧 안개가 걷히고 햇빛 세례를 받아 온몸이 간지러울 테다. 동장군이 물러나니 여기저기서 매화 꽃망울이 터지려 한다. 고난은 축복의 통로이다. 머지않아 딸과 그를 만나는 이들도 갸륵하고 향기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
맘스커리어 / 류인채 시인 2080m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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