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스커리어=최정애 교육전문기자] 아이가 네다섯 살 무렵 잠시 말을 더듬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말도 워낙 빨랐고 사용하는 어휘의 수준도 남다른 데다 한글, 영어 등 문자 습득까지 빨라 주변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말을 더듬으니 기다렸다는 듯 걱정을 가장한 참견이 쏟아졌어요.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이한테 영어 소릴 들려줘서 그래!’
‘그래서 이중 언어는 시키는 게 아냐!’
‘책을 많이 읽더라니!’ 등등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인데다, 그 참견에 신경을 쓰기엔 저도 제 아이도 너무도 소중했기에 주변 의견은 참고만 하고 제 방식으로 아이의 상황에 대응했어요.
참 ‘괜찮은 내 아이’가 말을 더듬으니 도와주고 싶었어요.
말이 머릿속 생각을 따라가기 버겁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하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아이 눈을 바라봤어요.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 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다정하게 눈 맞춤하고, 생각도 마음도 행동도 모두 멈추고 모든 감각을 아이의 눈과 마음에 맞추고 집중했어요.
‘응, 으~응! 그랬구나... 그랬어?
우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길 엄마한테 일등으로 해주는 거야? 정말 고마워!’
그동안,
일하며 집안 일하느라 아이의 말에 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미안한 만큼 더욱 온 마음과 몸을 집중해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어요.
그게 효과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아이의 말더듬은 오래가지 않아 멈추었고, 천천히 또박또박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아이로 자랐어요.
초등학생 시절 어느 날,
하교한 아이가 제게 학교에서 억울했던 일을 쏟아내듯 엄청 빠른 속도로 토로하곤 ‘엄마 얼굴만 보면 그냥 기분이 좋아져! 엄마가 내 엄마여서 참 다행이야~’라고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 엄마에게 일러바치면 모든 게 다 풀린다던 아이의 한마디가 엄마로서 자괴감이 들던 많은 나날들을 지나가게 만들어줬거든요.
그 한마디 덕분에 저도 제 상처를 돌보고 보듬으며 조금씩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클 수 있었어요.
연말이 다가오며 아이를 새로운 기관, 새로운 학년으로 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기관 선택에서 부터 적응을 잘할까?.. 아이의 장점보다 부족한 점이 유독 눈에 들어와 염려와 함께 고민도 깊어질 텐데요...
아이들은 엄마라는 태양을 보고 자라는 ‘해바라기’에요
남과 다른 점, 부족한 부분을 고쳐주려 하기보다 부디 남과 다른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는 부모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마음을 다잡기에 참 좋은 동화책과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사진=예스24] |
This is what I like to remember, to help stop myself from crying.
'I talk like a river'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릴 거예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에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수상 작가 ‘시드니 스미스’가 그림을 그린 그림책이에요.
굽이치고 부서져도 쉼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아이가 아픔을 딛고 눈부시게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지켜준 아버지의 모습이, 남과 다른 자신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눈부신 성장이 참 감동적인 동화책입니다.
시적인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오래토록 여운이 남는 그림책인데요, 동화책을 읽으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사유하고 점검해보기 좋아요. 때론 동화책 한 권이 육아서나 교육서보다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하는데요, 이 책 역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의 한 가지 단점, 한 가지 부족한 점을 채워주려는 부모이기보다 아이가 가진 것에 집중하시길! 아이가 이미 가진 것, 장점에 집중하다 보면 장점이 점점 커져 단점이 분명 있긴 하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날이 올거에요. 자신이 가진 것, 장점에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스스로 필요할 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해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노력이고, 성장이지요.
작년 초 광화문 빌딩의 현판에 실린 시 한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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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정애 교육전문기자] |
사랑, 정봉건
사랑한다는 것은
열매가 맺지 않는 과목을 뿌리째 뽑고
그 뿌리를 썩힌 흙 속의 해충은 모조리 잡고
그리고 새 묘목을 심기 위해서
깊이 파헤쳐 내 두 손의 땀을 섞은 흙
그 흙을 깨끗하게 실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모진 비바람이 삼킨 어둠이어도
바위 속보다도 어두운 밤이어도
그 어둠 그 밤을 새워서 지키는 일이다.
훤한 새벽 햇살이 퍼질 때까지
그 햇살을 뚫고 마침내 새 과목이
샘물 같은 그런 빛 뿌리면서 솟을 때까지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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