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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얼마 전 새 학년을 시작한 딸이 학교에서 3일 만에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짬밥 좀 쌓인 초등학생들이라 얼마나 시끄럽고 말을 안 들었을까 상상이 된다. 시끄럽고 산만한 군중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선 그들보다 큰소리, 더 큰 에너지로 전달을 하던가, 아니면 그들을 조용히 시킨 후에 보통의 에너지로 전달을 하는 방법이 있겠다.
여기서 좀 더 고급 기술로 가자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행동을 하여 나에게 집중을 시켜놓고 여유 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이 있겠다. 이것을 코미디언들이 잘한다. 물론 다른 연예인들도 사람들의 관심을 잘 끈다. 그런데 장르가 약간 다르다. 소위 비주얼이 좋은 연예인들은 본인의 노력 없이도 그냥 시선이 몰린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손예진, 원빈이 지나간다면 눈이 자동으로 그쪽으로 돌아가는 원리 같은 거다. 장윤주가 긴 다리로 휙휙 걸어가는데, 고개가 안 돌아가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보통의 코미디언들은 고개가 휙 돌아가는 비주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 유명세마저 없는 상황이라면 더 시선을 잡아채기가 어렵다. 그래서 코미디언은 본인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야 한다. 집중을 시켜야 웃길 수 있으니까. 웃음뿐만 아니라 폭발적 감정(분노, 슬픔, 웃음 등)은 모두 그전에 몰입의 순간이 필요하다.
아무튼 나는 이렇게 코미디언이 자신에게 집중을 시키는 방법을 ‘귀를 만들기’라고 표현한다. 여러분들은 많은 행사에서 진행자들이 시작한 때 자신에게 선물 있고, 호응이 좋은 분들께 드리겠다는 말에 귀가 쫑긋하여 소리 높여 박수 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일종의 귀를 만들기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말할 때 선물을 뿌리면서 귀를 만들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내가 이 고급 기술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지금 알려드리려고 한다.
‘천천히 걸어보라!’
실제 여러분이 길을 나가서 걸어보면 천천히 걷는 것이 잘 안될 것이다. 그냥 평소보다 천천히면 된다. 미친 사람처럼 길 한복판에서 슬로모션처럼 걸으라는 뜻이 아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분은 코미디언이 될 것을 추천한다. 주변도 둘러보고, 하늘도 보면서 천천히 걸어보는 거다. 그냥 기계적으로 걸음만 천천히 걸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호흡도 천천히 해야 천천히 걸어지는 것을 알게 될 거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팔이 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뒷짐을 지면 편해진다. 양반처럼 여유 있게 뒷짐을 지고 걸어보자.
어쨌든 핵심은 호흡이기 때문에 이 글을 다 읽고 나중에 걸어봐야지 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냥 이 글을 읽으면서 숨을 천천히… 천천히… 쉬어보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우린 숨도 빨리 쉰다. 괜찮다. 천천히… 숨 좀 천천히 쉰다고 내 삶이 뒤처지는 것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숨을 천천히 쉴 줄 알아야 시행착오를 줄임으로써 내 삶이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천천히 숨쉬기, 걷기가 사람의 귀를 만드는 작업과 무슨 연관이 있나? 연관이 있다.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냐는 것이다. 화가 났던, 웃기고 싶던, 어떤 감정이 폭발하고 싶을 때 그걸 잠시 스스로 대기 상태로 만들어 둘 수 있냐는 것이다. 단상 위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서있는 것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그냥 말 안 하고 서 있으면 된다.
그런데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마이크를 잡고 말없이 단상 위에 그냥 서 있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임을 알 거다. 잠시의 말의 공백도 견디기 힘든데, 말없이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볼 때까지 그냥 바라만 보고 서 있는 것. 아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은 이 글만 봐도 지금 땀이 나고 있지 싶다. 아무튼 차분하게 기다려주면 귀가 만들어진다. 자! 이제 귀를 만드는 방법은 알았다. 그럼 이걸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주변에 우리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말 안 듣는 자식들, 배우자, 직장동료, 친구, 병원, AS센터같이 바쁜 사람들. 그들에게 말을 많이 하고, 화를 내야 내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귀가 있어야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귀를 만들고 천천히 이야기하자. 그리고 기왕 만들어진 귀니까 래퍼처럼 때려 박지 말고 발라더처럼 전해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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