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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
나 역시 병원에서 환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나쁜 소식 전하기’가 있다. 괜찮지 않고 그런 이유를 말하는 과정이다. 환자와 보호자 얼굴엔 실망, 원망, 속상함 등이 나타난다. 치료 시작 전 환자가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건 쉽지 않다. 학생이 자신의 성적을 받아들이는 것, 직장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 가족과 주변의 진실과 마주하는 과정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은 자신에게 주는 위로, 대중을 현혹하는 매체에 빠져 지금을 잊고 싶어 한다. 물론 모든 이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한계와 문제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걸. 모든 것이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게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3차 병원이라는 개념은 결국 여기가 마지노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겉모습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많은 변수가 존재할 수 있다. 환자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산부인과 의사로 전공의부터 시작해 20년 훌쩍 넘는 시간을 보냈다. 한때 하루에 수술 10개를 하면서 ‘나는 수술의 대가야’라는 자부심과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자부심, 밤새 환자를 본 뒤 아침을 맞이하며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쁨을, 환자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 깨어난 환자의 눈빛과 음성에서 황홀감을 느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보다 많은 환자를 만났다. 정말 드물다고 하는 경우의 환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경험하면서 의술과 수술이 정말 어려운 것임을 점점 더 느낀다. 주변 동료가 본인 몸을 챙기지 못해 중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일을 보면서 더 많이 고민하게 됐다. 요즘은 가장 무서운 단어가 환자가 이야기하는 ‘괜찮죠?’라는 말이다.
의료는 어떤 시술이건 변수가 있고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에 다양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인술’이라는 표현이 정말 맞다. 누구나 좋은 결과와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누가 싫은 결과를 받아들이고 싶겠는가.
우리의 의료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이기에 심지어 쌍둥이도 환경만 달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은가. 형제자매일지라도 다른 결과가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정말 쉬운 말이지만 지금은 가장 필요한 말 같다. 어느 명의도 환자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최선의 결과를 내려고 정말 괜찮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괜찮죠?”라는 질문에 확답하는 것은 의사로서 점점 더 두려워진다. 환자를 서운하게 하거나 야단치고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법정 공방에 대한 문제가 화두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인지된 것 같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모든 의사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괜찮아지려고 노력한다’라는 것이다. 또 괜찮다고 장담하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하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고통스럽게 자신의 일처럼 힘들어하는 본성과 이성을 가지도록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훈련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이런 부분을 공감해 주었으면 좋겠다. 의술은 완벽하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인지하고 있으나 막상 본인의 일이 되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글로 적어 본다.
맘스커리어 / 김태희 순천향대 부천병원 교수 heeobgy@schm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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