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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
내가 교육복지 일을 시작한 초창기 때 한 여학생의 말이다. 한참 커야 할 중학교 여학생의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중학교에서는 무료 급식을 하는데, 이 여학생은 왜 방과 후 편의점에 들러 사서 먹는 삼각김밥 하나가 하루 한 끼의 식사인 건지......
그 여학생의 다음 말은 이러했다.
“아침은 당연히 굶고요, 제가 늦게 일어나는 것도 있지만, 집에 제대로 된 음식이 없어요. 우리 엄마는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누워만 계세요. 어쩌다 한 번씩 기운을 내시고 식사를 챙겨주실 때도 있지만요. 학교에서 먹을 수 있는 점심이 제가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있는 하루 한 끼 식사인데, 함께 먹을 친구가 없어서... 혼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자꾸 신경이 쓰여요. 혹시라도 혼자서 밥을 먹는 내 모습이 밥충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혼자 먹는 게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친구들의 시선이 저는 두려워요. 교실에서는 아무도 제게 말을 걸지 않고, 팀별 프로젝트 수업일 때는 반 애들이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해요. 근데 졸업은 해야 하니 학교를 안 다닐 수는 없잖아요. 점심시간에 다른 반 친구들도 모두 모여 있는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전교생들에게 내가 왕따인 것을 들키는 것 같아서 배가 너무 고파도 저는 식당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혼자 교실에 남아 있어요.”
‘배고픈 점심시간 동안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이 아이가 한 시간 동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도 또래들로부터 철저하게 무시되고 소외당할 학교의 공간으로 가야 하는 이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할까?’ 나는 시리도록 마음이 아파졌다.
어른인 내가 이 친구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한없이 죄스러워졌다. 내가 지금 당장 이 아이의 아픈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울어준 들, 내일이면 또다시 이 아이는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운 친구 아닌 또래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 가야 한다.
“선생님, 중학교 졸업은 해야죠. 친구들 때문에 제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졸업을 못 하게 되면, 잘못한 것도 없는 저는 졸업도 못 하고, 제가 피해자인데..... 결국 저만 손해 보는 거잖아요.”
정신적, 신체적으로 배고픔을 가진 이 아이의 말은 더 이상 피해자로 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학교생활이 어떻게 하면 덜 고통스러워질까?’ 를 고민했다. 그 정답을 찾기란 매우 힘들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정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이를 만날 때마다 혼자서 하루 종일 외로웠을 그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이고 위로하고, 함께 분노해 주는 것, 그러다가 이 아이의 마음이 위로받아 진정되면, 다른 친구들의 언행에 휩쓸리지 않고 내 중심을 바로 세워가는 방법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점심시간에 누군가는 가장 배고프고 아프고 고통받는 아이가 있다는 것, 또는 함께 밥을 먹을 친구가 없는 자기 모습이 비참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존경하는 선생님들, 점심시간에 친한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번호대로 앉거나 자리를 지정해서 정해진 자기 자리에서만 점심을 먹는 규칙이 때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예방하는 방안이기도 해요. 학교에서 그러한 점심시간의 규칙을 만들 수는 없나요?”
이 정도의 의견을 제시하는 내 역할이 어른으로서 얼마나 무능하고 부끄러운지.... 이 글을 쓰는 내내 또다시 그때의 먹먹한 감정이 올라와서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한참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웃고, 싸웠다가도 금방 화해하고 친해지면서 건강하게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로 나누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인지, 나이만 먹고 어쩌다 어른이 된 나와 같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고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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