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 아이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clsrn9105@hanmail.net | 2026-01-19 13:10:49
잘 키운 결과물이 아니라, 자기 속도로 자라는 한 사람으로 보기
[맘스커리어 =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지난 칼럼에서 한두 자녀 시대의 양육 환경이 어떻게 아이 한 명에게 기대와 불안을 집중시키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구조 속에서 자주 드러나는 한 가지 양육 방식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아이를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대하는 태도다.
우리는 익숙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목표를 세우고, 일정과 단계를 나누고, 중간 점검을 하고, 최종 결과물을 확인한다. 회사에서도, 학교 과제에서도, ‘언제까지 무엇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가’를 정해 놓는다.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어느 순간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그대로 옮겨붙을 때다.
계획표 속에 들어가는 아이의 삶
현장에서 부모를 만나다 보면, 아이의 삶이 마치 프로젝트 계획표처럼 정리되어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초등 때는 기초학습과 공부 습관을 다지고,
중⋅고등 때는 내신과 입시에 도움이 되는 활동 위주로만 시간을 쓰고,
대학과 졸업 이후에는 취업에 얹을 수 있는 스펙을 계속 더해 가고...”
이렇게 한 줄로 정리해 놓고 보면 그럴듯한 성장 로드맵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서 아이(그리고 나중의 청년)는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는 시간을 조금씩 잃어버린다.
어떤 활동을 선택할지의 기준도 서서히 달라진다.
‘이게 나중에 입시에 도움이 될까?’
‘자기소개서에 쓸 만한 경험이 될까?’
‘경력으로 남길 수 있는가?’
아이에게 지금 어떤 의미가 있는지보다, ‘나중에 활용 가능한 스펙인지’가 우선순위가 되기 시작한다.
프로젝트식 양육이 남기는 심리적 풍경
프로젝트에는 분명 장점이 있다.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행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 전체를 프로젝트처럼 다루면, 아이는 자신을 이렇게 느끼기 쉽다.
‘나는 지금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일까.’
‘이대로 가면 부모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될 수 있을까.’
‘계획에서 한 단계라도 뒤처지면, 나는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 많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선택이었던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이 아이들은 대체로 성실하고, 겉으로 봤을 때 문제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내면에서는 ‘이 삶이 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공허함을 호소한다.
조금만 계획에서 어긋나도 “이제 끝났다”, “망했다”라는 극단적인 표현이 쉽게 나온다. 프로젝트는 성공 여부로 평가받지만, 성장이란 애초에 그런 식의 평가에 잘 맞지 않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처럼 설계된 인생에서 성취는 기쁨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깝다.
‘다행이다. 이번에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쌓이는 성취는 아이의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자리 위에 겨우 올라가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투자’의 언어가 스며드는 순간들
프로젝트식 양육의 이면에는 ‘투자’의 언어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간과 비용을 이렇게 들였는데, 여기서 포기하긴 어렵죠.”
“이만큼 준비했으면, 이 정도 결과는 나와야 하지 않겠어요.”
부모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다만 이런 언어가 반복될수록, 아이의 선택과 경험은 이미 들어간 투자에 의해 묶일 수도 있다.
진로 문제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타난다. 아이에게 정말 맞는지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을 가장 낭비 없이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때, 아이의 마음은 점점 좁아진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 길이 내 삶과 잘 맞는가?”가 아니라,
“이 길이 지금까지의 투자와 계획을 덜 버리는 선택인가?”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가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모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위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차라리 침묵을 선택한다.
아이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주체로 서야 한다
아이를 프로젝트처럼 대하지 말자는 말은 계획을 세우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계획을 세우되, 그 중심에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을 두자는 말에 가깝다.
프로젝트의 기준은 늘 ‘얼마나 완성도 있게 끝냈는가’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지나며 무엇을 경험했고,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이다.
부모가 아이를 ‘완성해야 할 결과물’이 아니라 자기 삶을 배우고 구성해 가는 주체로 대하기 시작할 때, 질문은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이걸 하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지?’에서
‘이 선택을 통해 너는 무엇을 겪어 보고 싶은지?’로,
‘이 활동이 기록으로 남을까?’에서
‘이 경험이 너에게 어떤 느낌과 깨달음을 남길까?’로
초점이 옮겨 간다.
현장에서 제안하는 작은 전환들
프로젝트식 시선을 조금씩 풀어 내기 위해, 부모와 교육자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전환을 몇 가지 제안하고 싶다.
첫째, ‘완성도’ 대신 ‘시도 횟수’를 칭찬하기.
“이번에 100% 제대로 했니?”보다
“이번 달에 새로운 시도를 몇 번 해 봤니?”를 묻는 것이다.
완벽하게 해낸 결과보다, 시도하고 배우는 경험 자체가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둘째, 한 학기마다 ‘아이의 우선순위’를 아이가 먼저 적어 보게 하기.
부모가 먼저 계획을 짜고 아이에게 따르게 하는 대신, 아이에게 “이번 학기에 네가 제일 몰입하고 싶은 것 세 가지만 꼽아 보자”고 제안해 보자.
그다음에 부모가 “그 목표를 돕기 위해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걸 정해 보자”고 대화를 이어 가면, 아이의 삶의 주도권이 조금씩 회복된다.
셋째, 실패를 평가가 아니라 자료로 다루기.
프로젝트에서는 실패가 ‘성과 미달’이지만, 성장에서는 실패가 다음 선택을 위한 정보가 된다.
“왜 이렇게 됐니?” 대신,
“이번에 해보니 어떤 점이 어려웠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달리해 보고 싶은지”를 같이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환들은 거창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나는 부모의 계획을 수행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당사자구나’라는 감각을 조금씩 심어 준다.
아이를 프로젝트로 대하는 양육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실패하지 않게 해 주고 싶다’는 강한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비난이 아니라, 우리 안에 스며든 프로젝트 프레임을 알아차리고 조정하는 일이다.
아이의 삶을 향해
“이 계획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 과정이 이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 길이 될 것인가”를 물어볼 때,
부모와 아이의 대화는 조금씩 달라진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질문을 이어, ‘소유와 통제의 자리에서 동행과 신뢰의 자리로’ 부모-자녀 관계를 어떻게 옮겨 갈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맘스커리어 /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clsrn9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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