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롤로그_다문화는 외부가 아닌, 우리 DNA 속의 역사적 현실이다

임준 박사

imjun7@kakao.com | 2025-11-18 19:14:10

▲임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다문화는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인식을 전환할 때

 

[맘스커리어 = 임준 박사(아동청소년교육) / IAM교육연구소 대표] 우리는 종종 '다문화'를 최근 이주민 증가로 인해 새롭게 대응해야 할 '외부의 문제'로 인식한다. 마치 우리 사회가 단일문화였다가 갑자기 다문화 사회로 변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식이다.

 

한반도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결코 단일민족이었던 적이 없다. 고조선 시대부터 중국 대륙의 다양한 민족과 교류했고, 삼국시대에는 북방 유목민족, 중국 한족, 남방 해양세력과 끊임없이 접촉하며 문화를 주고받았다. 고려는 개방성으로 유명했고, 심지어 원나라와의 혼인동맹을 통해 몽골의 피가 왕실에 흐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명나라와 청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이후에는 항왜에 의해 조선의 전투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우리의 언어, 음식, 의복, 건축, 예술 어느 것 하나 순수하게 '우리 것만'인 것은 없다. 김치는 고춧가루라는 남미 작물을 받아들여 탄생했고, 한복은 몽골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불교문화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왔고, 유교는 중국 사상이며, 현대 한국의 기독교 문화는 서구에서 전래되었다. 무엇보다 우리의 성씨를 살펴보면 다문화의 흔적이 많은 가문들에 남아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필자 역시 본관은 풍천으로 시조 할아버지는 고려시대 제국대장공주를 수행하여 온 한족출신의 관리였고, 그 후손이 필자와 가족들이다.

 

다문화는 외부에서 새로 들어온 개념이 아니다. 다문화는 이미 우리 DNA 속에 살아 있는 역사적 현실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화적 풍요로움 자체가 수천 년간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하며 재창조한 결과물이다. 

 

K-컬처가 증명하는 문화 융합의 힘

 

이러한 역사적 DNA는 현재 K-컬처의 세계적 성공으로 다시 한번 증명되고 있다. BTS,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POP은 미국의 힙합, 유럽의 EDM, 라틴 리듬을 자유롭게 흡수하고 재해석하여 전 세계 팬들을 매료시킨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한국적 서사에 보편적 인간 이야기를 담아 글로벌 흥행을 이뤘다.

 

K-푸드 역시 마찬가지다. 한식은 이제 김치와 비빔밥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식 타코, 김치 버거, 고추장 파스타처럼 전통 한식과 다양한 세계 요리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진화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융합의 힘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미 글로벌 다문화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전 세계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보고, 틱톡에서는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과 소통하며, 온라인 게임에서는 국적 불문하고 팀을 이뤄 협력한다. 학교 급식 메뉴에는 스파게티, 카레, 짜장면이 당연하게 올라오고, 방과 후에는 피자와 햄버거를 먹으며, 주말에는 일본 라멘이나 베트남 쌀국수를 먹으러 간다.

 

이것이 2025년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일상이다. 다문화는 먼 나라 이야기도, 특정 가정의 문제도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

 

인식 전환이 필요한 세 가지 이유

 

그렇다면 왜 지금, 다문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한가? 단순히 이주민이 늘어나서가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생존 역량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번째, 글로벌 생존 역량으로서의 문화 융합 능력

 

필자가 다문화청소년을 연구하면서 얻은 중요한 발견은 “이중문화 수용태도가 삶의 만족도와 진로 개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다문화 배경 청소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AI 시대에는 특정 지식이나 기술보다, 낯선 환경과 상이한 문화를 동시에 수용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생존 능력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문화적 다양성을 가장 중요한 인재 역량으로 꼽고 있다. 타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높을수록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회복 탄력성이 높아진다.

 

우리 역사가 증명하듯, 외부 문화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 융합한 시기에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꽃피웠다. 고려의 개방성, 조선 초기의 문화적 다양성이 그랬다. 반대로 쇄국정책과 폐쇄성은 쇠퇴를 가져왔다.

 

두 번째, AI 시대, 공감 능력의 폭발적 가치 상승

 

인공지능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인간 고유의 '정서적 지능'과 '공감 능력'의 가치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은 2025년 가장 중요한 직업 역량으로 창의성, 정서적 지능, 리더십을 꼽았다.

 

다문화적 환경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도화된 공감 훈련의 장을 제공한다. 상대방의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관점을 수용하며, 차이 속에서 공통점을 찾는 능력은 AI가 절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리더십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접하고 체화할 때, 이들은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갖추게 된다.

 

세 번째, 차이를 혁신으로 전환하는 문화 자본

 

역사적으로 위대한 혁신은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탄생했다. 르네상스는 동방과 서방 문화의 만남에서, 실크로드는 다양한 문명의 교류에서 꽃피웠다. 현대의 실리콘밸리가 혁신의 중심지가 된 것도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재들의 문화적 다양성 덕분이다.

 

'차이'를 '결핍'이 아닌 '자본'으로 인식할 때 혁신이 일어난다. 같은 배경,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관점은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하고, 예상치 못한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낸다.

 

우리 아이들이 문화적 차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법을 배울 때, 이들은 미래 혁신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부모와 사회가 실천해야 할 인식 전환


가정(집): 유연한 사고의 롤 모델 되기

 

부모는 일상에서 마주하는 글로벌 콘텐츠를 통해 자녀에게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낯선 음식, 다른 언어,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이상하다" 대신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여주자. 이것이 유연한 사고의 출발점이다.

 

엄마의 주체적 삶이 주는 교육적 메시지

 

필자가 맘스커리어 칼럼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조할 주제다. 엄마가 경력과 자아실현을 포기하지 않고 성장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다양한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엄마의 주체적 삶 자체가 아이에게 정체성과 진로를 주도적으로 개척하라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된다.

 

사회: 포용적 시스템 구축

 

학교와 지역사회는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포용적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통합을 넘어 상호 학습과 성장의 장이 되어야 한다. 포용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맺음말: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힘

 

다문화 인식 전환은 낯선 것을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아니다. 이미 우리 안에 있던 DNA를 다시 깨우는 일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 다양한 문화를 융합하여 더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진 역사적 강점이다.

 

AI 시대의 가장 뛰어난 인재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폭넓게 공감하며, 가장 유연하게 사고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음 칼럼부터 12회에 걸쳐, 필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와 진로 개척 능력을 극대화하는 구체적인 '부모 지지 시스템 설계'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

 

우리 모두 함께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성장의 여정을 시작하자.

 

맘스커리어 / 임준 박사 imjun7@kakao.com 

 

※본지 칼럼글은 기고자의 의견으로 본사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