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터뷰] "부모의 정리 습관이 자녀의 평생 습관돼"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 2024-12-19 07:00:20
"물건에 제자리가 있는 집이 '정리가 잘된 집'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정희숙 공간미학 대표는 자신을 공간 디자이너로 부른다. 정리 정돈도 물론 중요하나 공간을 재구성해 집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꿔 주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한눈에 물건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그 공간에 물건이 모여 있는 것이 진정한 정리다”라고 말한다.
정리수납 전문가로 유명한 정희숙 대표는 저서 <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에서 백화점에서 일한 경력뿐 살림만 했던 주부가 세상에 나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정리’라는 세계로 입문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정 대표는 많은 가정을 정리하며 깨달은 것은 부모의 정리 습관이 자녀의 평생 습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자녀에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정리해 둔 상태를 보여 줄 것”을 당부했다. 정희숙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대표님, 본인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공간 정리 디자이너 정희숙입니다. 그동안 만여 명의 집을 직접 정리했습니다. 정리만으로 공간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공간미학’을 소개해 주세요.
공간미학은 삶을 바꾸는 정리라는 철학으로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고 수납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사는 공간을 더 효율적이고 조화롭게 활용하도록 만드는 일을 하는 회사입니다.
- 경력 보유 여성으로 지내다 ‘정리’의 세계로 입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결혼 후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됐습니다.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 육아와 살림을 반복하는 일상에 지치고 무기력했습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을 키워 놓고 ‘일을 해야겠다’ 결심했을 적엔 마흔이 넘은 나이였습니다. 경단의 시간이 오래됐기에 취업을 하기가 참 막막했습니다.
자격증도 없고 마흔이라는 나이도 취업에 걸림돌이었습니다. 일을 찾을 적에 주변에선 간호조무사, 공인중개사 자격증 등을 취득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결혼 전엔 월급에 맞춰 일했고 이후엔 집안일을 하며 아이들을 양육했기에 이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취업을 고민하는 제게 조카가 하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모는 정리를 잘하니까 정리하는 일을 알아봐” 그날부터 저는 정보를 찾았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취업은 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을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운영하는 정리수납 전문가 과정을 듣고, 현장경험을 쌓았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매력을 느끼게 돼 창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 ‘정리를 전문가에게 맡긴다’라고 하면 ‘자신이 살 집은 자기가 해야지’라는 시선이 강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정리를 의뢰하는지 궁금합니다.
정리를 어려워하고 또 하더라도 잘 안 되어서 스트레스를 받는 분이 많습니다. 출산과 죽음으로 가족 구성원이 달라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출산의 경우 공간은 정해져 있는데 가족이 한 명 혹은 두 명 더 생기는 것이잖아요. 공간이 필요하기에 기존 가족의 공간이나 물건을 줄여야 합니다. 한데 당장 이사를 갈 수 없으니 저희 쪽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사 또는 인테리어 후에 정리 의뢰도 많습니다. 공간이 달라지면 정리는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에게 맞춰 지은 것이 아니기에 그 수납 구조에 맞춰서 정리를 합니다.
- SNS에 보면 정리가 잘된 집은 대부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리업체에서도 ‘비움’을 강조하고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정리가 잘된 집’은 어떤 집입니까?
집에 물건을 아무것도 두지 않는다고 정리가 잘된 집은 아닙니다. 내가 필요한 물건을 빨리 찾을 수 있거나 쉽게 꺼내고 다시 되돌려둘 수 있는 수납 시스템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또 집엔 취향과 라이프에 맞는 물건이 있어야 하며, 내 공간은 물론 부부·가족공용공간도 있는 집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장 한 칸이라도 내 공간이라면 의미가 있습니다. 집에 있는 의자 하나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설렘이 있는 물건과 일상을 공유한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집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자 쉼의 공간입니다.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지요.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에겐 제자리가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약이 어디 있는지, 손톱깍이, 물티슈 등의 자리를 알고 있는 집이 제가 생각하는 ‘정리가 잘된 집’입니다.
- 이런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정리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습니까?
우선 체력이 중요하고 부지런해야 합니다.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정리를 ‘귀찮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정리를 잘하기 쉽지 않습니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내 물건에 대해 잘 알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실 정리는 이론이 아닙니다. 반복해서 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리를 잘하려면 직접 해 봐야 합니다. 가장 빠르게 정리를 배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사실 아이 키우는 집은 정리가 쉽지 않습니다. 흔히 아이 키우는 집은 정리가 안 돼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대표님은 자녀와 함께 사는 집의 공간 분리를 강조하는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대부분 어수선합니다. 종종 우리는 “아이가 어릴 적엔 다 이러고 사는 거야” “너무 쓸고 닦으면 복 나간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렇게 믿고 있기도 합니다.
정리는 그 사람의 자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집에 아이·아빠·엄마·부부·가족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방은 개인 공간이고 거실은 공용공간입니다. 크지 않더라도 내 방이고, 내 물건이며 내 것입니다. 물건의 주인이며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정리의 시작은 공간의 목적 정하기입니다. 공간의 목적을 정해야 그곳에 들어갈 물건이 정해집니다. 누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서 그 공간의 목적에 맞는 물건이 따라갑니다.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자기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자신만의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 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구매한 무언가를 버리기 어려워합니다. 정리를 위해 어떤 것을 버리기 시작해야 할까요?
- 결정이 쉬운 물건부터 버려야 합니다. 버려서 정리해야지, 먼저 버리고 정리하는 것은 요요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구분하고 종류별로 모아서 재고 파악 후 버리기를 권합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유효기간 지난 식재료, 약, 영양제, 화장품 등입니다. 대용량으로 구매해서 오랫동안 쓰지 않고 보관 중인 물건도 많습니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 오래되어서 냄새나는 반찬통, 스크래치가 나서 변색된 밀폐용기, 나무젓가락, 플라스틱 용기 같은 일회용품 등입니다. 이런 물건이 집에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단 그 물건을 수납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공간에 이런 물건이 주인이 되어 정작 수납해야 할 중요한 물건을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결국 버리기는 물건의 중요도를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정리업체를 이용할 때 드는 비용이 적지 않습니다. 이용하지 못했을 때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정리를 하면 좋을지 소개해 주십시오.
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베란다와 신발장에서 시작해서 안방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버릴 물건이 많은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선풍기, 교자상, 크리스마스트리, 여행용 가방, 수영용품 등이 있겠지요. 매일 한 가지씩 선택해서 꺼내고 모은 뒤 분류해 수납합니다. 이 순서대로 진행하면 좋습니다. 하루에 딱 10분씩 한 종류만 정리해 보세요.
- 주부가 공간디자이너를 하게 될 때의 장점은 무엇이 있습니까?
정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는 일도 정리이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은 일도 정리입니다. 사실 주부라면 매일,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주부는 누구보다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또 디테일에 강하기 때문에 손끝으로 접고 넣고 하는 일에도 탁월합니다. 비록 내 집은 아니나 정리 전후 만족감이 크기 때문에 일이 힘들어도 할 수 있습니다.
정리를 배울 적에 기본은 ‘왜 정리가 필요한가’ 그 필요성부터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정리가 주는 효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이 일에서 꾸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여성은 집이라는 공간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꾸미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공간 디자이너의 일이 잘 맞고 잘할 수 있습니다.
- 일과 육아를 함께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럴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노하우를 들려주십시오 .
큰아이가 8살, 둘째가 5살일 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출근길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갔고, 밤늦게 데려왔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놀이터에서 자전거에 부딪혀 지나가던 분이 그 광경을 보고 전화를 해 주었습니다. 한데 일하는 중이라 가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일하는 동안 작은 일, 큰일을 다 겪었으나 그러는 중에도 일은 제게 가장 우선이었습니다. 집안 행사, 친구들 모임, 취미생활, 종교생활까지도 아예 하지 못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가능한 삶이었습니다. ‘나한테 일은 지금 가장 최우선이다’라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려놓아야 할 무엇인가가 있고 한 부분은 손해를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 공간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 경력보유여성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많은 분이 정리에 관심이 있고 배우기를 희망합니다. 공간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합니다. 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공간디자이너는 옷을 잘 접고 많이 저장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여기에 이 물건을 수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하고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입니다. ‘내가 정리하는 일을 좋아하나?’ ‘나는 몸으로 움직여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등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요즘은 유튜브만 봐도 정보가 많습니다. 그런 것을 따라서 내 집 먼저 시작해 보세요.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도전해 보세요. 이 일에 가슴이 뛴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 맘스커리어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경단녀에서 N잡러가 되가까지 1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청소도우미, 가사도우미라는 말에 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정말 절실했습니다. 할 줄 아는 것이 정리였고 하고 싶은 일도 정리였습니다. 내 인생을 바꾼 정리는 이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꿔 줍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정리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육아와 살림, 그리고 정리까지 하는 많은 주부께 응원을 보내며 박수를 드립니다. 사실 정리하는 일은 주부의 일만은 아닙니다. 각자의 물건은 각자가 스스로 정리해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 시스템을 만들어서 살림에서 정리까지 쉽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5천여 집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정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요. 여러분, 진짜 정리를 시작해 보세요. 내 방이 정리되고 내 집이 정리되면 내 인생도 정리된답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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