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에 드는 작품] 선택지 없는 '엄마'의 딜레마

최영하 기자 / 2022-08-17 09:30:08
tvN <우리들의 블루스>, jtbc <나의 해방일지>

[맘스커리어=최영하 기자] 영화·드라마·서적·시·노래 등의 콘텐츠 속에 숨어 있는 여성 이슈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도출해나갈 계획이다. 단순한 작품 소개를 넘어 그 안에 담긴 핵심적인 내용과 장면을 통해 여성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조망한다.

 

# 선택지 없는 엄마의 딜레마

-tvN <우리들의 블루스> 그리고 jtbc <나의 해방일지>

 

전통적으로 혈연관계의 무게감이 큰 우리나라 가정에서 엄마는 늘 특별한 존재여야 했다. 가족을 위한 ‘총대’를 매는 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인생과 행복은 뒷전으로 밀렸다. 우리 사회는 이를 숭고하고 아름다운 희생으로 추앙해왔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어쩌면 중요한 부분을 잊거나 외면해왔다. 희생의 의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우리 시대의 엄마들에게는 별다른 선택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희생을 유도하고 칭송하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이 아니었을까. 

 

올해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등극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와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 같은 맹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우리들의 블루스 공식홈페이지]

<우리들의 블루스>의 옥동(김혜자 扮)은 제주 시골마을에서 홀로 살아가는 70대 할머니다. 또래 노인들과 소일하며 텃밭에서 기른 채소들을 5일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말수가 적고 조용하며 행동이 느릿한, 겉보기엔 평범한 노인이다.

 

어린 나이에 화재로 부모님을 잃고 어렵게 살다 제주로 시집을 왔고,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나 싶었는데 어느 날 태풍에 뱃일을 나간 남편이 바다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딸 역시 바다에서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남은 건 코흘리개 아들 하나뿐이었다. 삶을 살아낼 자신이 사라지면서, 남편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첩으로 살며 본처의 병수발을 해야 했다. 본처 자식들이 자신의 아들을 괴롭혀도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아들과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렇게 수십 년 고생 끝에 새 남편이 사망하고 옥동은 제주로 돌아왔다. 아들 동석(이병헌 扮)은 40대가 훌쩍 넘도록 제대로 된 연애조차 못 해본 채 제주를 떠돌며 만물상으로 살아간다. 엄마와 아들은 시선이 닿는 곳에 머물지만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사이다.

 

드라마는 옥동의 불치병이 드러나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그린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뻔뻔할 정도의 요구로만 일관하는 옥동. 주위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엄마를 얼음장처럼 대하던 동석. 

 

두 사람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짧은 동행을 통해 서로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그리고 옥동이 세상을 떠나고 동석이 이를 지켜보면서 그간의 모든 갈등은 눈 녹듯 사라진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가진 보편적인 정서를 벗어나지 않는 선의 결말이다. 

 

▲[사진=나의 해방일지 공식 홈페이지]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씨 삼남매의 엄마로 나오는 혜숙(이경성 扮)은 근심이 가득한 중년 여성이다. 남편(천호진 扮)과 한 평생을 살며 자식들을 키웠다. 첫째 딸 기정(이엘 扮), 아들 창희(이민기 扮), 막내딸 미정(김지원 扮)과 한 집에서 살아간다.

 

남편은 하루 종일 묵묵히 일만 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일으키거나 피곤함을 선사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동시에 말수도 다정함도 없다. 세상이 굴러가는 이야기와 젊은 자식들의 생각에는 무감각하고 그저 고지식한 태도뿐이다.

 

결혼 의지는 있지만 연애에 자신감이 제로인 기정, 서울이 아닌 수도권 변두리에 사는 것에 볼멘소리가 그칠 날이 없는 창희,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미정까지 세 자식은 혜숙에게 아픈 손가락들이다. 

 

아침밥을 차리고 오전·오후 땡볕에서 남편과 밭일을 하다 돌아와 다섯 식구가 먹을 밥을 짓고 빨래를 돌리는 게 혜숙의 하루 일과다. 자식들이 틈틈이 일을 거들지만 좀처럼 성에 차지 않고, 엄마로서 눈에 밟히는 것들로 인해 잔소리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삼남매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극이 흘러가는 이유로 엄마 그 너머의 혜숙의 서사는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엄마 하면 집 밥을 떠올리는 것처럼 혜숙은 항상 ‘먹을 것’을 통해서만 존재감이 드러난다. 다섯 식구가 둘러앉는 밥상, 얹혀사는 구씨(손석구 扮)에게 갖다주는 음식, 기정의 연인 태훈(이기우 扮)에게 몰래 사주는 밥 등이 등장할 때뿐이다.

 

혜숙은 첫째 딸 기정이 오랜 외로움 끝에 반듯한 연인을 만나게 된 사실을 알고 나서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막내딸 미정이 구씨가 떠나면서 힘들어하자 엄청난 슬픔과 연민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날, 평소처럼 밥을 안쳐놓고 잠시 누워 잠이 들었던 혜숙은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며 갑작스레 극 중에서 퇴장한다. 엄마는 죽음으로써만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참으로 역설적인 대목이다.

 

옥동과 혜숙은 각기 처한 상황과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이 시대 엄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고생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며 자식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감과 반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두 엄마의 행동들은 현재의 자식 세대들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답답함을 선사한다. 자식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비치는 장면도 허다하다. 그러한 그림자는 드라마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녀들에게 모든 혹은 가장 많은 책임을 씌우는 건 깊이 고민해 볼 문제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시대는 여성 그리고 엄마에게 특별히 가혹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선택권이 사실상 사라진 상황은 사람의 시야를 더욱 좁아지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엄마의 ‘선택’을 강요했고, 고귀한 희생이라는 허울뿐인 훈장을 달아줬다. 

 

그 과정에서 엄마가 자신에게 남은 자아실현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통로는 오직 자식들의 성공밖에 없었다. 지금은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자식의 의지와 다른 진로와 직업을 강요하는 엄마의 이야기 뒤에는 이 같은 배경이 존재한다. 일부의 예외가 있다고 해서, 이제는 그런 사례가 점차 사라져가는 시대라고 해서 이런 엄마에게 무작정 손가락질할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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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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