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젠더 갈등 해소 노력 진행돼야
▲[사진=픽사베이]
[맘스커리어=최영하 기자] 여성과 관련한 세상 모든 이슈들을 다룹니다. 경력단절 같은 해묵은 문제부터 코로나19 같은 비교적 최근 이슈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봅니다.
90년대부터 2022년까지 젠더갈등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나
성별 갈등의 역사는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여권 신장이 이뤄지고 성평등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다. 긴 세월 차별에 시달리던 여성들과 같은 기간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남성들의 눈높이가 같아지면서 싹튼 크고 작은 갈등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진정한 평등까진 아직 멀었다는 여성과 평등을 넘어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성의 시각차가 뚜렷하다. 오늘날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로 대두된 젠더갈등은 지금까지 어떻게 진행돼 온 것일까.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문민정부가 출범한 1990년대는 성평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변화가 움트기 시작한 시기였다. 94년 강간과 성추행을 포함하는 성폭력 개념을 처음으로 법제화한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성폭력과 관련한 실태조사·예방교육·상담소·보호시설 등이 등장했다. 이듬해에는 여성 정책을 총괄하는 여성발전기본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97년 외환 위기가 도래하면서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극심한 고용 불안정과 이로 인한 가정불화, 그리고 여성의 적극적인 맞벌이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는 결혼 불평등과 저출산 등 현대 젠더갈등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의 시발점이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99년에는 헌법소원에 딸 군가산점의 위헌 결정 및 폐지가 이뤄졌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에게 7·9급 공무원 시험 및 공기업 취업 응시자를 대상으로 만점의 5% 이하로 추가점수를 보정해 주는 제도였는데, 이를 둘러싸고 여성들의 지지와 남성들의 반발이 크게 충돌했다. 엄청난 갈등 속에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제15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로 2001년 여성가족부의 전신인 여성부가 신설됐다. 이때 만들어진 부처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숱한 갈등과 비판에 시달리며 폐지 위협을 받고 있다. 그 배경은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효능을 둘러싼 논란이다.
격전의 2010년대를 예고하듯 2009년 여성시대 카페와 2010년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가 온라인에서 각각 탄생했다. 여성시대는 주민등록상 여성만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특징에서 비롯된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일베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대상을 겨냥한 심각한 수준의 혐오 표현과 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후 남성연대,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커뮤니티들이 난립하면서 2010년대는 그야말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사회적 이슈 곳곳에서 젠더갈등의 전선이 구축됐고, 비판을 넘어 비난과 혐오가 난무했다. 셧다운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미투 운동, 소라넷 폐쇄 등이 대표적인 격전지였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도서 ‘82년생 김지영’, 펜스 룰 논란, 혜화역 시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대림동 여경 논란, 리얼돌 금지 논란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첨예한 논란과 갈등이 양산됐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세계를 휘감은 2020대는 n번방 사건으로 시작됐다. 철저한 진상조사 및 처벌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했음에도 엉뚱하게 2차 가해와 혐오, 젠더갈등이 더욱 부각됐다. 이 외에도 혐오 표현의 여부를 둘러싼 논란, 특정 기업의 성차별 면접 논란, 패션회사의 남성회원 차별 논란 등이 쉴 틈 없이 계속됐다.
2021년에는 전국단위 선거를 맞아 정치권에서도 젠더갈등이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특정 정당이 특정 성별의 표심을 얻기 위해 정책과 공약을 내놓는 것은 그전에도 존재했으나, 이를 둘러싸고 차별과 편가르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최초였다. 이대남·이대녀 같은 단어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처럼 젠더갈등은 90년대 이래 계속되는 것은 물론, 양적 질적으로도 좋지 못한 쪽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갈등이 벌어지는 지점은 꾸준히 늘어나고, 갈등의 끓는점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불이 붙는다는 이야기다.
암울하게도 이를 중재 혹은 해소하려는 노력의 주체인 정부와 정치권은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대신 각종 검열과 형사적 해결에 치중하고 있으며, 정당들은 표 계산에 바쁘다. 그렇게 젠더라는 프리즘으로 본 한국 사회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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