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 아동도 매일 학원 다닌다...대한민국 부모들은 왜?

김보미 엄마기자 / 2025-04-30 09:40:17
육아정책연구소, 보고서 통해 영유아 사교육 실태 분석해
학습 사교육, 효과 미미하고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 미쳐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5살 때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그전부터 영어를 시키는 추세예요. 영어유치원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주변 또래보다 뭔가 뒤처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동네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애들이 다 가는데 우리 애만 안 갈 순 없으니까요. 기본적으로 한글과 영어를 시키고 여기에 미술이나 수영 같은 예체능 과목을 몇 개 추가하면 사교육비만으로도 월 50만 원은 그냥 넘어요.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다들 그렇게 하니까 안 할 수가 없죠"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육아맘 A씨)

 

A씨의 말처럼, 요즘 부모들에게 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시작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는 영유아 사교육,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아이의 발달조차도 경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에게 뒤쳐질까 봐, 조금 더 잘했으면 한다. 이건 결국 사회 전체에 감도는 불안의 반영이다.


대한민국의 영유아 사교육 실태가 각종 미디어를 통해 속속 드러나면서 그 과열 양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세 고시'에 이어 '4세 고시'가 등장하고 4세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기저귀도 채 떼지 못한 아기들이 영어학원에 다니는 모습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영유아기 사교육 경험과 발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전국 만 2·3·5세 자녀를 둔 부모 1500명 중 65.3%가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있었으며 사교육을 시작하는 시기는 점점 앞당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유아는 주당 평균 4.59회의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1회 수업 시간은 약 42분이었다. 영유아 사교육의 주요 목적은 자녀의 발달과 흥미 증진이었으나 실제 교육 형태는 영어학원, 조기 수학 프로그램, 한글 교육 등 초등 선행 학습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사교육에 드는 비용은 평균 19만8000원, 학습 관련 사교육 비용은 평균 16만3000원, 예체능·기타 사교육 비용은 평균 14만2000원으로 나타났으나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반일제 이상 학원의 경우 월평균 비용이 182만 원으로 편차가 매우 컸다.

사교육 시작 연령은 반일제 이상 학원을 다니는 집단과 어머니의 최종학력이 대학원 졸업 이상인 집단에서 가장 빨랐으며 가구 소득이 700만 원 이상인 고소득 가정의 경우 학습 관련 사교육과 예체능·기타 유형의 사교육을 모두 시키는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즉, 자녀 연령이 많고 부모의 최종학력 수준이 높을수록,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추가 사교육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는 사교육의 효과는 과연 어떨까. 연구진은 서울 및 경기권 초등학교 1학년 아동 72명과 그 부모를 대상으로 사교육 경험과 발달 특성 간 관계를 분석한 결과 언어 능력, 문제 해결력, 집행기능 발달 등은 유아 시기 사교육 경험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영유아 시기 학습 사교육 경험이 많은 아동에게서 자존감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감지됐다. 학습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 발달 문제도 일부 사례에서 확인됐다. 다만 예체능 분야 사교육의 경우 성실성, 타인 이해 능력, 집중력 등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을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 판이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왜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사교육을 놓지 못할까.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들이 사교육을 선택하는 주된 이유는 '공교육 내 프로그램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유치원, 어린이집보다 영어유치원 등 반일제 이상 학원을 선호하는 이유로는 △강사 대 아동 비율이 낮아서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 때문에 등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는 유아 사교육 대응 방안으로 공교육 내 방과후 프로그램 강화, 영어·예체능 맞춤형 과정 지원, 인프라 확대 등을 제시했으나 사교육 수요를 근본적으로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실제로 공교육 내 특성화 프로그램이나 특별활동이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비율은 38.6%로 과거보다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부모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사교육만큼 효과적이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부모의 자녀 사교육비 부담은 단순히 공교육의 질에 대한 문제를 넘어 저출생 심화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보고서는 "사교육보다 부모-자녀 간 상호작용의 질, 가정의 양육환경 등이 아이의 발달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학습 중심 사교육은 스트레스와 자존감 저하 등 부작용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공교육 내 프로그램의 질 향상, 가정 중심의 놀이 및 학습 환경 조성, 지역사회 기반 교육 인프라 확충 등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6일 국민 1000명으로 구성된 '아동 학대 7세 고시 국민 고발단'은 서울 종로구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7세 고시를 심각한 아동 학대로 규정해 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했다. 국민 고발단은 "7세 고시가 불필요한 경쟁과 극단적인 선행학습을 조장해 아동 발달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교육 당국의 강력한 제재를 촉구했다.

 

이제는 경쟁의 방향을 바꿔야 할 때다.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경쟁, 부모의 불안을 줄이고 공교육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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