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시장에 풍선효과 나타나...보다 더 근본적 대책 절실 [맘스커리어=김보미 엄마기자] 정부는 지난달 19일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초고난도 문항, 소위 킬러 문항을 배제하고 출제 기법을 점검한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이태규 의원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킬러 문항은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나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므로 앞으로 공교육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은 수능에서 배제하기로 했다"며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고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으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책이 발표되자마자 사교육 업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 변별력을 위해 준킬러 문항을 더 많이 출제할 수밖에 없다"며 준킬러 공략반을 바로 개설하는 등 정부 방침에 얄미울 정도로 빠르게 대처했다. 더불어 "상위권 학생들은 실수 줄이기에, 중위권 학생들은 준킬러 문제 공략에 집중해야 한다"고 대비책까지 내놓았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과 학부모는 갑작스러운 정부의 발표에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3 수험생 아들을 둔 조씨는 "수능이 5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이런 대책을 발표하는 정부의 속내가 궁금하다"며 "고작 킬러 문항이 없어진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사교육이 정말 줄어들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바뀌는 수능에 대비할 방법을 모르는 아이와 학부모들이 더 학원에 의지하고 매달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수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험생들은 수시전형을 위해 논술학원에 등록하거나 컨설팅을 받는 등 플랜 B까지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 수능이 예년보다 쉬울 것이라 예측되면서 반수를 택하는 재수생과 N수생들도 대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교육 경감 대책의 풍선효과다.
학생들이 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고 이해한 지식으로 풀 수 없는 초고난도 문제가 수능에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킬러 문항을 배제하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 교육의 관행으로 굳어져 버린 사교육 시장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변별력만을 위해 존재하는 킬러 문항에 많은 부작용이 뒤따르는 것은 사실"이라며 "대학 입시 준비는 공교육만으로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교육 개혁의 최소 합의"라고 말했다. 이어 "킬러 문항 방지법을 사교육 대책의 출발점으로 삼고 더 나아가 수능 제도의 개혁, 공교육 강화, 대학 서열 체제 개혁 등 근원적인 교육 개혁을 위한 논의를 해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킬러 문항 배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가 여론조사기관 메트릭스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기로 한 것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은 45.4%, 반대하는 비율은 43.7%로 찬반이 팽팽하게 나타났다.
학부모 A씨는 "대학원생도 풀기 어렵다는 초고난도 문제들이 수능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그러나 단순히 킬러 문항을 배제한다고 해서 사교육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오히려 더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만큼 사교육 경감을 위해서는 공교육을 뿌리째 변화시키는 등 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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