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여성들] 칭송받는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최영하 기자 / 2022-11-01 09:30:31
발레의 대중화에 바친 짧은 인생과 화려한 날개
[역사를 바꾼 여성들]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맘스커리어=최영하 기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중대한 순간에 존재감을 보였던 여성을 조명합니다. 시대의 억압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놨거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현대인들에게 귀감이 될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발레의 대중화에 바친 짧은 인생과 화려한 날개

 

▲안나 파블로바[사진=위키백과]
예나 지금이나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만의 업적을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피땀 어린 노력을 기울인다. 물론 그 역시 무척이나 훌륭한 일이지만,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예술을 알리고 향유할 수 있게끔 하는 작업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술성과 대중성 중 선택은 예술가의 몫이지만, 그 혜택으로 즐길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나는 것은 대중의 몫이다. 그러한 대중의 몫을 위해 짧지만 강렬한 삶을 바친 예술가가 여기 있다. 세계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안나 파블로바의 이야기다.

 

1881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안나는 세탁 일을 하는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다.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교육에 매우 헌신적이었다. 

 

8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와 함께 마린스키 극장을 찾은 안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처음 접하고 발레의 매력에 흠뻑 빠져 발레리나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린 딸의 꿈을 이루어주고자 어머니는 그를 황실발레학교로 데려갔으나 처음에는 너무 어린 데다 몸이 말랐다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본 프랑스 출신의 러시아 발레계의 거장 마리우스 프티파는 과감히 안나를 발탁했고, 그렇게 10살 때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가녀린 몸으로 주변의 의구심을 받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천부적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발레는 힘이 있고 선이 굵은 스타일이라 안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몸이 말랐다 보니 관절을 곧게 펴거나 회전을 정확하게 하는 자세에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엄청난 연습을 통해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발굴해냈다. 신체적으로 강한 동료 발레리나들이 선보이는 아크로바틱한 동작 대신 여리고 우아하며 섬세한 표현에 집중한 것이다.

 

그렇게 안나는 1899년 황립 발레단에 입단한 지 7년 만에 발레리나로서는 최고봉인 프리마 발레리나의 위치에 등극하며 러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의 대표 작품은 바로 1905년 미하일 포킨에 의해 창작된 ‘빈사의 백조’로, 길고 여린 팔을 흐느적거리며 죽어가는 백조를 표현해냄으로써 극찬을 받았다.

 

동시대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사도라 덩컨과 달리 안나는 새롭고 혁신적인 춤보다 고전 발레의 아름다움을 세계 모든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예술적 신념으로 삼았다. 이는 1907년 처음으로 러시아를 떠나 접하게 된 유럽 무대가 큰 계기가 됐다. 유럽 전역의 관객들로부터 받는 열렬한 갈채와 환호를 통해 안나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는 것이 본인에게는 더 많은 영감을 주는 매혹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1909년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발레 기획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창단한 발레 뤼스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를 누볐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우수한 무용수·안무가들로 구성돼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을 돌며 20세기 유럽 발레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현재까지도 무용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수많은 작품을 초연했으며, 안나는 이 활동에서 가장 위대한 발레스타 중 한 명이었다.

 

1911년 직접 발레단을 창단한 안나는 유럽의 재능 있는 무용수들을 모아 본격적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고전 발레의 명작들을 들고 유럽·미국·인도·중국·일본까지 세계 곳곳을 방문했다. 투어 했다.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의 화염에 휩싸인 유럽 전역을 돌며 사람들의 마음을 발레로 달래주려 애썼다. 15년 동안 그의 발레단은 50만 마일의 거리를 순회하며 4000회에 이르는 공연을 소화했다. 

 

그는 공연 자체를 넘어 후세에까지 많은 영향력을 유산으로 남겼다. 발레단을 창단하면서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안나는 공연이 없을 때면 젊은 발레 학도들을 양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안무가였던 프레데릭 애쉬톤, 발레리나 알리샤 마르코바 등 수많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안나로부터 영향을 받아 춤에 입문했다. 또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기적으로 미국 순회공연을 펼쳐 미국 발레의 발전과 대중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안나는 자신의 생일을 3주 두고 갑작스런 폐렴으로 향년 5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장기간 유럽 투어 중 열차 사고를 당했는데, 다친 곳은 없었지만 다음 열차를 기다리느라 추운 밖에서 눈보라를 맞고 있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다. 폐렴에 걸린 안나를 진찰한 의사는 즉각적인 수술과 함께 휴식을 권고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일정을 강행했다. 결국 안나는 1931년 1월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한 호텔방에서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던 백색의 빈사의 백조 옷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았다. 그가 사망한 직후 ‘빈사의 백조’ 공연이 예정돼 있던 극장에서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무대를 따라 스포트라이트가 음악에 맞춰 무대를 비췄고, 관객들은 모두 기립해 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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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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