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403년, 조선의 김치는 닭을 품었다–잊힌 발효의 지혜, 닭오이김치”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ehk0408@nate.com | 2025-07-31 11:10:25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맘스커리어 =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안녕하세요? 전통음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전통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는 김은희입니다.

오늘은 더위를 이길 수 있는 식재료 '닭'과 '오이'를 이용한 '김치'를 소개할까 합니다.

“잊힌 발효의 지혜, 닭오이김치”

우리가 오늘날 즐기는 김치는 대부분 매콤한 고춧가루와 젓갈을 버무린 배추김치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 기록된 김치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닭오이김치’이다.

이름만 들어도 의문을 자아내는 이 김치는 1403년경, 조선 태종 초기의 의서이자 음식서인 『산가요록(山家要錄)』에 등장한다.

『산가요록』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유탁(柳濯)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책으로, 식치(食治), 약선, 음식 보존법 등 건강과 음식에 관한 지식을 담고 있다.

이 책에 기록된 ‘닭오이김치’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매우 이례적인 조합이다. 오이에 속을 파고, 그 안에 삶은 닭고기와 생강, 마늘, 참기름 등을 넣고, 장에 담가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히 오이김치에 고명을 얹은 것이 아니라, 단백질과 채소, 발효장을 활용한 복합 조리법이자 초기 형태의 약선 김치인 셈이다.

이러한 조리법은 단순한 맛을 넘어서, 기능성을 염두에 둔 방식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고기가 귀했고, 특히 여름철에 고기를 보관하고 섭취하는 일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닭고기를 오이에 넣어 장에 절이는 이 방식은 부패 위험을 줄이면서 단백질 섭취를 가능하게 하는 보존식의 성격을 갖는다.

특히 닭고기는 한방에서 허약 체질을 보하는 데 쓰였고, 오이는 갈증을 해소하는 여름 채소이니, 이 조합은 단순한 요리가 아닌 건강식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김치의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김치는 시대와 지역, 재료에 따라 계속 변해왔고, 이 ‘닭오이김치’는 김치의 변주 가능성과 유연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는 현대의 김치 응용 레시피, 예컨대 퓨전김치나 기능성 김치의 뿌리가 이미 600년 전 조선의 식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단서다. 잊힌 음식이라기보다는, 지금 다시 꺼내어 재해석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 낯설고도 낯익은 ‘닭오이김치’를 오늘날의 식재료와 위생 기준에 맞춰 재현해 본다면 어떨까? 다음은 『산가요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현대적 감각을 반영한 닭오이김치 레시피이다.

 

▲닭오이김치 [사진=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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