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때문에 퇴사하지 않도록” 한국형 일·가정 양립 제도 확산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 2025-11-28 11:10:37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여성의 경력 단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CBS방송과 USA투데이 등 미국 매체에 따르면 올 상반기 미국에서 직장을 떠난 여성은 40만 명에 달했으며,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엄마의 퇴사가 늘어나고 있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5세 미만 자녀를 둔 엄마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23년 9월 70.8%에서 올 들어 67%까지 하락했다.
캔자스대 미스티 헤게니스 교수는 “여성이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에 지쳐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라며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결국 직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살제로 미국의 어린이집 비용은 유료로, 한 달에 약 1500달러가량 소요된다. 양육자 입장에선 비싼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어린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결국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로 전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어린이집이 무상으로 운영된다. 또 정부와 지자체에서 자녀를 대신 돌봐주고 돌봄 시간을 보장하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광주시가 전국 최초로 시행한 ‘초등생 학부모 10시 출근제’는 학부모 근로자가 하루 1시간 근로시간을 줄여 자녀 돌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손실은 지방정부가 보전한다. 이 제도는 내년부터 국가사업으로 확대돼 초등생뿐 아니라 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까지 적용 대상이 넓어지고, 지원 기간도 최대 1년으로 늘어난다.
전남 영광군은 매주 수요일을 ‘가족 사랑의 날’로 지정해 정시 퇴근을 장려한다. 직원이 참여형 프로그램에 동참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영광군은 공직자부터 가족 친화 문화를 실천해야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 분위기도 좋다. 한 직원은 “업무에 밀려 가족과의 시간이 늘 부족했는데 군에서 제도적으로 정시 퇴근을 독려하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책임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는 자녀 양육을 지원하는 ‘도담도담 휴가’와 난임치료 시술을 받은 공무원을 위한 ‘난임치료지원휴가’ 등 특별휴가를 신설했다. 도담도담 휴가는 10세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이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특별휴가다. 난임치료지원휴가는 시술 전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휴가로 2일을 제공한다.
기업 차원의 변화도 눈에 띈다. 한화그룹은 올해 초 출산 가정에 현금 1000만 원을 지급하는 ‘육아동행지원금’을 도입해 이미 100가구 넘게 지원했다. 직원의 96%가 “실질적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으며, 86%는 “추가 출산 고려에 긍정적 영향을 받았다”라고 답해 제도의 효과를 입증했다.
포스코는 포항, 광양, 서울 등 사업장에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임직원 자녀의 보육을 책임지고 있다. 첫째 출산 시 300만 원, 둘째 700만 원, 셋째 이상은 1000만 원을 지급하는 출산장려금, 난임 치료 지원, 임신기 단축근무 등 다양한 가족친화 제도를 시행 중이다.
LX인터내셔널은 육아휴직·가족돌봄휴직 등 법정 제도를 적극 보장하며 가족친화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본사에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출산 축하 선물 지급 등 출산·육아 지원도 강화했다.
유연근무제를 통해 오전 10시까지 자율 출근이 가능하며, 지난해 전체 임직원의 96%가 이를 이용했다. 원격근무 이용자도 180명에 달한다. 가족돌봄 휴직·휴가는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으며, 최대 90일 휴직·10일 휴가가 가능하고 근속기간에 포함된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곳곳에서 일·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양육자가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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