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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표지 |
[맘스커리어=최영하 기자] 우리는 어려서부터 위인전을 비롯해 많은 역사책을 읽는다. 그런데 그 많은 역사책 중에 여성을 다룬 작품은 매우 적다. 위대한 업적과 기념비적인 사건의 중심에는 항상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남성의 물리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탓에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쥐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 속의 여성들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여성의 수가 적거나 훌륭함이 떨어져서는 아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올릴만한 여성들은 많았으나 역사가 이들을 배제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누락시켰을 뿐이다.
역사책 속 여성들의 입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는 그렇게 묻혀버린 여성들의 이야기와 그 배경을 다루고 있다. 개별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활약상을 추적한다.
대다수의 역사책들은 남성에 의해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돼 왔다. 여성의 업적이나 능력이 기록되지 않은 경우는 너무도 많다.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지만 우리들은 유리 가가린만 기억한다. 남성과 동일하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역사는 기억해주지 않았다.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는 황제인 남편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반란군에 쫓겨 도망치려 할 때 반란군에 맞서 결사적 항전을 끝까지 주장했고, 이후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역사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치적을 대대적으로 강조하는 반면 그녀는 운 좋게 신분상승에 성공한 신데렐라로 기록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고대 그리스를 민주주의 발상지로 기억하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당시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여성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역사가 헤시오도스는 "고귀한 제우스가 여자를 창조한 것은 남자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라고 강조했고, 크세노폰은 "여성에게 가장 명예롭고 적합한 일은 물레질"이라고 깎아내렸다.
우리에게 최고의 철학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태아가 자궁에 있을 때 남아는 정의·공평·선이 자리한 오른쪽에, 여아는 왼쪽에 앉아 있다"고 했다. 뱃속에서부터 여성은 부족한 존재고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더 작고 덜 발달했다는 언급도 있다.
이같은 차별적 시선은 중세와 근대에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작품 '에밀'에서 "여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바느질을 하고 요리를 해야 하며 여성의 호기심은 억눌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을 강조한 칼 마르크스 역시 노동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지적하면서도 사실상 무임금인 여성의 가사 노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심지어 여성의 중요한 업적을 남성의 것으로 바꿔치기한 경우도 있다. 이베리아 왕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여사도 니노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신학자들로부터 성별이 부정당했다. 자국의 위대한 성인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이 그녀가 남성이었다고 거짓으로 기록한 것이다.
이에 맞서 책은 여성이 역사의 한 축을 지탱해왔음을 강조한다. 켜켜이 묵은 편견과 혐오가 여성의 업적을 폄훼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심하게는 누락시켜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낸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미래를 내다볼 통찰을 얻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선 왜곡된 반쪽짜리가 아닌, 온전하고 균형 잡힌 역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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