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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내가 첫 '이불킥' 강연을 한 곳은 정부세종청사였다. 내 글의 대부분이 부부행복과 육아에 관한 내용일 때였는데, 행복한 직장 생활에 대한 강연 요청이었다. 약간 생소한 주제에 강연 고수도 두려워한다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지만, 강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나는 어떤 분위기인지 알지도 못하고 섭외에 응한 것이다.
당시 나의 블로그도 파워 블로그 같은 것으로 선정되고 책도 한 권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할 이야기는 많지 않겠나 싶었다. 머릿속에 강연 순서를 짰다. 내가 과거에 어떤 걸 했는지 이야기를 하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일상 블로그를 프로젝터로 띄워서 스마트하게 표현하고, 마무리에 멋진 메시지! 이런 식으로 구성을 짰고, 끝났을 때는 타이슨의 명언이 떠올랐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진’
무덤덤하고 진지한 표정의 공무원분들의 반응은 내게 핵펀치처럼 날아왔다. 그래서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멘탈을 지켜내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블로그를 프로젝터로 띄우면서 숨 좀 돌릴까 싶었는데, 인터넷은 왜 그리 버벅대는지 계속 마가 떴다. (공연인들은 의도치 않은 짧은 공백을 마가 뜬다고 표현한다) 아무튼 블로그 작전도 틀어지고 그렇게 나의 첫 공무원 강연은 망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망신스럽다. 이쯤 되면 잘 모르고 위험한 곳은 피할 법도 한데, 빈 일정에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콜을 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에서 강연 요청이 왔는데, 금연 강연을 해달라는 거다. 내가 금연한지 8년쯤 됐을 때였으니 경험담을 이야기하면 되겠다 싶으면서도 고등학생에게 금연 주제로 집중 시킬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있었다. 하지만 하겠다고 했고, 강단에 섰다. 당시 강당에 있던 학생들의 40%는 자고, 40%는 딴짓을 하고, 20%만 내 얘기를 듣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금연 이야기가 아니라 연예인 이야기를 해줄 때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7년이 쌓였더니 지금은 강연을 하러 가면 그곳이 어디던 어떤 주제이던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단상에 오른다. 심지어 주제도 현장 분위기를 보고 자유롭게 바꿀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거의 1인 스탠딩 코미디를 한다는 생각으로 오르는 것 같다. 강연 시작한 지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종의 망신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에 드래곤볼이라는 만화가 있었다. 그 만화의 설정 중에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설정이 있는데, 그 방은 밖에서의 하루가 그 안에선 1년이 된다. 그래서 그곳에서 수련을 하면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이 망신이 그런 효과였다. 강연을 가서 망신을 당할 때마다 급성장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이나 더없이 귀한 시간들이 된 거다. 사실 코미디언들이 이런 망신에 유독 강한 면을 보인다. 무한도전이라는 불세출의 예능 프로그램이 16년 동안 왕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망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이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번 칼럼은 실패가 두려워 시작도 안 하려는 우리 딸에게 해주고 싶어서 썼다. 물론 우리 딸(현 10살)은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만큼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이다. 미완이어도 무대에 오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순간에 배우게 될 것이고 그것이 또 다음 기회를 만들어 준다. 한번 망했다고 절대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성공과 실패의 연속이 아니라 실험의 연속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고 실험 중이니 실패도 아니고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르니 딱히 성공도 아니다. 망신에 내 몸을 던져 넣어라. 급격한 성장을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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