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Comedians never die, 생활 속 져주는 습관들

이정수 작가 / 2023-01-17 11:00:56
마음 강자되기…"져주기는 강자의 특권"

▲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이전 칼럼에서 코미디언들이 죽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 져주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져주는 습관이라는 말이 철학적이고 좋기는 한데, ‘뭘? 어떤 걸 져주라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 편에선 져줘야 하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들어볼까 한다. 시작하기 전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앞으로 나올 예시들이 별거 아니지만 실행이 꽤 어려운 별거라는 것이다. 져준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우선, 먼저 인사하기다. 상대는 날 보고 인사를 안 했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거다. 나는 자가가 없는 덕에 2년마다 이사를 다니곤 했었다. 그러니까 2년마다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나야 이미 얼굴이 조금 알려진 사람이라서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동네 사람들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도 환영하고 좋아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래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주변 라인들은 직접 인사를 다니며 떡도 돌리곤 했는데, 이것도 동네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냥 뭘 돌린다고 다 달가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동네를 다닐 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로 했다. 

 

처음 보는 내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인사를 한 것인가 확인을 했다. 그때면 나도 약간 쑥스러워졌는데, 그럼 나는 미국인 마냥 쿨하게 ‘네! 당신이 맞습니다!’하는 눈인사를 했다. 솔직히 요즘 동네를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것이 생소한 일이지 않나,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하면 ‘귀찮은 영업을 하려는 건가?’ ‘저 사람이 출마를 하려고 저러나?’하는 의심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난 꿋꿋하게 인사를 하며 다녔고, 덕분에 동네 사람들 속에 우리 가족을 녹일 수 있었다. 진짜 별거 없이 인사만 잘 했을 뿐인데, 종종 김치도 받고, 고구마도 받고, 와인도 얻어 마시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다 내 맘 같지는 않아서 인사를 그렇게 하는데도 낯을 가리는 건지,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 나도 사람인지라 부아가 난다. 불러 세워서 '내가 인사했는데 왜 안 받냐?'라고 묻고 싶지만 난 싸움을 못한다. 게다가 '누가 인사하라고 그랬냐?'라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하면 내가 져준 것이 아니라 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늘 사람을 마주치면 별생각 않고 습관처럼 먼저 인사를 한다. 그럼 최소한 적이 되지는 않으니까. 

 

지금 나의 경험담이 다소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 먼저 인사하기의 강점이 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다른 예로, 회사에 출근했는데 대표님이 날 보고 반갑게 먼저 다가와서 인사를 해준다면 어떻겠는가? 심지어 그분이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우리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한다면 분명 그 대표님이 다시 보일 것이다. (실상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보니, 내가 적고도 이 예문 느낌이 대표가 맥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당연히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음 생활 속 져주기는 개인적인 것을 기억해 주기이다. 사실 나는 뇌의 저장 공간이 많이 부족해서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못 외운다. 거의 지병 수준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거기에 이름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는 연락처 메모장에 자녀 이름을 적어 두기도 한다. 이건 부모가 된 사람들은 공감할 텐데, 어느 날 오랜만에 지인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내 자녀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근데 '이게 왜 져주기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우리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반대로 윗사람의 정보는 잘도 외워지는데 말이다. 그러니 내 위치와 상관없이 애정이 있다면 개인적인 것도 기억해 주자. 그러면 대화할 때도 상당히 도움이 될 거다. 이 밖에도 좁은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내가 먼저 빼주기, 내 앞에 차선 변경 차 끼워주기 등 우리 일상 속에서 져줄 수 있는 상황(하기 싫은데 해 줄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다. 아! 여기서 중요한 팁이 있다. 그렇게 져주고 서는 ‘훗!’하고 승자의 미소를 지어주면 더욱 효과가 좋다. 

 

져주는 습관은 대인관계에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지만, 이 져주기 안에 숨겨진 진의가 더 중요하다. 져주기는 강자의 특권이다. 내가 실제 강자가 아니라도 마음만큼은 강자로서 세상에 여유롭게 아량을 베풀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강자적 마인드가 내 안에 거하면 실제로 세상에서 강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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