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편, 반달에 담긴 추석의 마음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 2025-10-06 10:00:59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맘스커리어 =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안녕하세요? 전통음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전통음식을 널리 알리고 있는 김은희입니다.

이번 소식은 추석인 만큼 송편에 대해 소개할까 합니다.

추석 명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단연 송편이다. 햇곡식으로 반죽을 빚고, 깨·콩·밤·참깨·팥 등을 소로 넣어 반달 모양으로 접어 솔잎에 찌는 송편은 단순한 떡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삶의 지혜, 가족의 염원, 그리고 계절의 의미가 응축된 문화적 상징이다. 송편을 이야기하는 것은 곧 추석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송편의 기원은 농경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추석은 본래 ‘가배(嘉俳)’라 불리며, 곡식이 무르익는 시기에 하늘과 조상에게 감사를 올리던 절기였다. 이때 햇곡식을 찧어 반죽을 만들고, 가을 들판에서 거둔 곡물과 견과류를 소로 삼아 빚은 것이 바로 송편이다. 풍요의 상징인 곡식과 씨앗이 송편 속에 담겨, 내년에도 풍년이 이어지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가 깃든 것이다. 단순히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농사의 성과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함께 담은 제의적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송편의 모양에도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송편은 대체로 반달 모양으로 빚는데, 이는 “찬 달이 기울면 반드시 둥근달이 온다”는 믿음을 반영한다. 초승달이나 반달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미래, 그러나 곧 원만하게 차오를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송편을 빚는 손길에는 단순히 ‘예쁜 떡을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가정이 앞으로도 잘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배어 있다. 옛말에 “예쁜 송편을 빚어야 예쁜 딸을 얻는다”는 속담도 이런 맥락에서 전해진다. 송편 빚기는 곧 삶을 빚는 의례였다.


송편의 향기를 책임지는 것은 바로 솔잎이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깔아 두는 이유는 단순히 떡이 눌어붙지 않게 하기 위함만은 아니다. 솔잎은 방부제 역할을 해 상하지 않게 하고, 솔잎의 은은한 향이 송편에 배어들어 ‘가을 숲’을 담아낸다. 또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생명력과 절개를 상징한다. 조상들은 송편에 솔잎을 더해 긴 생명과 굳건한 기운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송편은 또한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다. 예전에는 추석이 되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다. 어른은 반죽을 하고,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모양을 흉내 내며 웃음을 보탰다. 담소와 웃음 속에서 빚어진 송편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정을 쌓고 공동체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송편을 나누어 먹으며,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송편의 모습은 조금 달라졌다. 편의점과 마트에는 색색의 송편이 진열되고, 온라인 주문으로 손쉽게 받아볼 수도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는 편리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편은 여전히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다. 차례상에 놓인 송편은 조상과 후손을 잇는 매개이고, 가족이 모여 나누는 송편은 여전히 화합과 풍요를 상징한다. 송편의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때로 “전통은 낡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송편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전통은 결코 낡은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치며 새로운 의미를 품어내는 그릇이다. 송편은 과거 농경사회의 제의적 음식에서, 오늘날 가족과 공동체를 잇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는 K-푸드의 한 장르로서 세계인에게도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다.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맛보며, 아직 채워지지 않은 우리의 미래도 둥글게 차오르길 소망해 본다.

현대사회의 송편은 ‘만드는 떡’이 아니라 ‘사는 떡’이다. 추석 명절 송편을 나누는 것은 곡식의 풍요를 넘어, 가족의 안녕과 공동체의 화합, 그리고 더 나은 내일에 대한 소망을 나누는 일이다. 둥근 보름달 아래서 송편 한 입 베어 물 때, 우리는 비로소 추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맘스커리어 / 김은희 원스팜 대표이사 / 전통요리연구가 ehk0408@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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