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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
서비스센터 도착시간 8시 38분, 먼저 오신 10여 명이 센터 입구 문 앞 계단에 줄 서 있다. 물론 커튼 창문 안쪽 센터 직원들도 고객맞이 준비에 분주하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린다. 은행 지점장 재직 때 고객섬김 이름으로 융통성을 부렸던 일이다. 당시 서울시 오세훈 시장님께서 서울시 체비지 땅에 임대아파트를 만들어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획기적 기여를 했던 시프트(SHIFT), 즉 20년 장기전세임대아파트를 신축 공급했는데, 서민 입장에서는 꿀 보다 더 달콤하고 더 기분 좋은 주거안정 정책이었고 워낙 인기가 좋아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 공급했었다.
문제는 당첨 후 부족한 임대금에 많은 분들이 발을 동동거렸다. 다행히 은행은 당첨되신 분들께 입주금의 80%까지 장기저금리로 임대 보증금 대출 상품을 준비했고 경쟁적으로 홍보를 위해 천막을 치며 팸플릿을 뿌리는 마케팅을 구사했다. 필자 또한 직원들 손잡고 고객 유치에 앞장섰다. 다만 아날로그 방식인 팸플릿 종이 대신 디지털 방식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로, 입주 예정분들의 동호회 방에 은행 카테고리 방을 만들어 지점장 실명과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전세 대출 상품을 상세히 안내했다. 아울러 친정집 가는 마음으로 은행을 찾아주시고 금융인의 한 사람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상담에 임하겠다고 약속도 드렸었다.
역시 시대에 맞는 SNS 마케팅은 적중했다. 상담을 받으신 분들은 대출상담 소감을 인터넷 카페에 '명불허전(名不虛傳) 우리 상암동지점', '시프트대출 걱정 마세요 대원군지점장 있잖아요', '대출받고 대원군지점장이 선물로 준 라면 두 봉지로 입주날 아들하고 입주 축하파티할래요' 등을 남겼다.
서울시 전역에서 구름처럼 방문해 주신 고객님들을 위해 더 해드려야 할 일이 진정 무엇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시간이 금이다. 직장인과 생업에 바쁜 분들을 위해 30분 먼저 은행 점방 문을 열고 오후 마감시간도 30분 연장하자!'
고객을 위한 작은 배려,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협조를 요청한다. 한 명씩 번갈아 30분 일찍 출근하여 셔터문을 열고 4시 30분 마감에서 5시까지 상담에 임하자고. 모두들 동심(同心)이고 동행(同行)이다. 물론 직원 섬김도 기본이고 충분히 마음이 통해야 했다.
진심은 통했다. 출근길이나 오후 늦게 방문하는 고객을 위한 30분의 배려는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고 신규 고객이 더 늘어났고 평가그룹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수상 상금으로 전 직원이 비행기 타고 제주도 올레길도 걸으며 다금바리, 해삼 껍질 술잔 만들어 한라산 소주 가득 따라 그 노고도 풀었다. 고객섬김 30분의 소중한 융통과 배려, 그것은 고객님을 위한 진정성의 표현이었으며 그 시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서비스센터 계단 앞에서 10여 분 서 있으니 대기 줄은 점점 더 길어지고 다리도 아프기 시작했다. 만약 그 옛날 무용담처럼 내가 시도했던 고객을 위한 배려의 오픈 시간 단 5분 만이라도 먼저 문을 열어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한다면? 아이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러한 생각을 노조원들이 그냥 있겠어? 오픈 시간 지켜야 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될 터인데 하는 타협의 생각을 할 즈음, 마음과 마음이 통한 것인지 서비스센터의 서비스라는 용어처럼 서비스 정신이 묻어 있는 것인지 본사의 방침인지 지점장의 철학인지는 몰라도 8시 50분 딱 10분 전에 셔터 정문을 열어주고 대기 번호표를 뽑아준다.
역시 고객을 향하는 진정 어린 마음, 고객을 향한 진심 어린 응대, 그것은 삼성 정신이고 대한민국을 리드하는 삼성의 저력이었다. 한때 삼성에 근무했던 삼성맨의 입장에서 삼성의 후배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기 그지없었다. 10분여 대기석에 앉아 신문도 보고 인터넷도 검색한 후, 기사님의 친절한 응대 속에 충전단자를 교체했다. 역시 성실했고 진정한 프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이었다. 공공기관, 공기업, 은행 등 대부분 한 시간 늦은 10시에 오픈한다. 지갑이 거덜 나 인근 친정집 은행 지점으로 향한다. 인출기 8대가 있는 좁은 공간에 수능인 줄 모르고 오신 분도 있고 시간에 맞추어 방문하신 분도 있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족히 20명이 넘는다.
역시 삼성 서비스센터처럼 셔터 안쪽 직원들은 개점 준비에 분주하다. 하지만 미간이 찌푸려진다. 30분 먼저 열고 30분 늦게까지 고객 섬김에 임했던 "라떼는 말이야"가 절로 나온다. 은행도 아니 친정집 은행만이라도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의 마음으로 10분 전 셔터를 올리고 객장 의자에서 기다리게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은행의 내규상 직원은 10분 전에 고객을 맞을 준비를 하도록 되어있다. 업무는 9시부터 시작한다 하더라도 고객이 밖에서 덜덜 떨게 하는 것보다 단 10분만 아니 단 5분 만이라도 배려해 주면 안 될까.
역시 셔터문은 정확히 9시 정시에 개방되었다. 계절은 추운 겨울로 들어선다. 사랑하는 후배님들 중 그 누군가 한 번쯤 셔터 앞에서 고객이 되어 문 열어줄 때까지 서 있어 보자. 은행원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경험해 보자. 나의 월급을 주는 고객님을 향해 삼성전자 서비스센터가 하는 것처럼 본사 규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고객을 향하는 마음으로 5분 만이라도 셔터 먼저 올려 의자에서 기다리게 해보는 지점장의 미덕을 발휘해 보자. 배려하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내 사랑하는 진청 후배들이여! 그것이 일선 창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상생(相生)의 금융(金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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