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 도입도 병행해야
[맘스커리어=김혜원 엄마기자] 지난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고 사라진 아이들, 즉 ‘유령 영아’에 대한 사건을 420건 접수해 400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주 보건복지부 전수조사 시작 이후 수사 중인 사건은 79건에서 193건으로 늘더니 하루 만에 400건으로 늘어난 것이다. 그 가운데 숨진 아이만 15명이다. 경찰은 정부와 각 지자체 조사결과에 따라 수사 대상이 급증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감사원은 2015~2022년까지 8년간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행방이 묘연한 영아 2천여 명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정부는 그들의 소재와 안전을 전수조사했다. 공무원들이 각 가정을 방문해 조사한 뒤 필요한 경우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수원시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를 발견한 것을 시작으로 ‘유령 영아’를 유기 또는 불법입양한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출생통보제’가 지난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의결됐다. ‘출생통보제’는 병원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으로 이를 시행하는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안이 의결된 것이다. 의료기관에서 신생아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하면 지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년 뒤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출생통보제’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 힘 김미애 의원은 지난 4일 동료 의원들과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출산제’ 도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출생통보제만 단독 시행될 경우 병원 밖 출산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라며 “여성은 생명을 지키는 길이 아닌 범죄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극적인 사건을 법과 제도로 최소화해야 한다”라며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궁지에 몰린 여성과 아기를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인 박정우 신부도 “출생통보제 적용을 환영하지만 이와 동반되는 산모의 병원 밖 출산, 낙태율 증가 등의 우려가 있어 보호출산제 또한 차질없이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미혼부모나 미성년자 등 출생신고를 주저하는 이들의 사정을 고려할 때 출생통보제가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를 만든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역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호출산제’가 통과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목사는 “우리나라도 선지원, 후 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이가 아파서 죽을 상태인데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전에는 병원도 못 가고 지원도 안 된다”라며 “행정이 이렇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에게 ‘베이비박스를 찾아가라’라고 안내해 준다”라고 전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을 돌봐 주는 곳은 현재 베이비박스가 유일해 최근 알려진 '유령 영아'의 상당수가 베이비박스에 신생아를 놓고 간 사례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은 부모가 베이비박스에 유기한 경우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유기죄나 영아유기죄 등 혐의를 선별해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유기 과정에서 베이비박스 설치 기관과 상담한 사실이 확인되면 입건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간 엄마를 자식을 버린 엄마로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도저히 형편이 안 되는 상황에서 아기를 살릴 방법을 찾고 찾아온 엄마들”이라는 것이다. 이 목사는 “지난해 아기 106명이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30%가 상담과 설득을 통해 마음을 돌려 다시 엄마가 데려갔다”라며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은 지켜진 아이들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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