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Comedians never die, 내 자리는 어디인가?

이정수 작가 / 2023-06-21 11:10:45

▲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책을 쓰고, 강연을 시작한 지가 얼추 10년 정도 되었다. 그 사이에 비슷한 장르에서 친해진 동료(?)들이 생겼다. 그림에다 심재원 작가, 정신과전문의 육아빠 정우열, 아동심리전문가 그로잉맘 이다랑이다. 이들과 모이면 누군가에게 말 못 할 고민들을 시원하게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어찌어찌 이들과 10주년 육아 회고 토크쇼를 하게 됐다. 워낙 자기 콘텐츠가 강한 사람들이라서 쇼 구성에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4명이 15분씩 강연을 하고 내가 그 사이사이에 진행을 하고, 마지막에 다 같이 모여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로 했다. 따로 리허설도 없었지만, 토크쇼는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으로, 다음까지 기약할 기대마저 생기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엔 내 진행력이 있었다…"고 동료들이 말해줬다. 동료들이! (물론 나도 속으로 생각은 했다.) 아무튼 이렇게 토크쇼가 잘 끝나고 나서 문득 나의 시작이 떠올랐다.

 

나는 코미디언 공채 시험을 한 번에 붙었다. 그래서 스스로 상당히 천재적 코미디언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데뷔 6개월 만에 스타가 됐으니 얼마나 자신만만했겠나? 그래서 예능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MC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마어마한 기회가 왔다. 이영자 누나와 공동 MC로 진행할 수 있게 된 거다. 쪽박집을 대박집으로 바꿔주는 방송이었는데, 이미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내겐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밥을 잘 못 떠먹었다. 그렇게 내 기회가 엎어졌다. 4회 정도 출연 후에 다른 MC로 교체가 된 것이다.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예능적 성과를 낸 적이 없었다. 나가는 족족 기회를 날렸다. 그리곤 세상이 내 재능을 몰라준다고 몽니를 부리며, 내가 가면 이상적일 것 같은 폼 나는 좋은 자리만 탐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리에 억지로 꽂혀 들어갔어도 난 망쳤을 거다. 그렇게 나는 내 능력과 내 자리에 대해 깨달아 갔다. 이상만 높아서, 되지도 않는 자리를 두고 마음속 경쟁만 한 것이다. 

 

‘내가 저 자리에 가면 쟤보다 잘 할 수 있는데…’

 

아니다. 관계자들이 봤을 때, 쟤가 저 자리에서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기 앉혀준 거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잘 안다. 그리고 냉정하고 정확하게 나를 판단한다. 그들도 그들이 하는 일이 잘돼야 하니까 확신이 드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는 지금 코미디언이라기보다는 강사에 가까워졌다. 코미디언은 내 계획이긴 했으나 원하는 자리에 가질 못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않게 책을 쓰게 되고, 강연을 시작하면서 강사가 됐다. 내가 선택했다기보다는 선택된 거다. 내가 책을 낼 수 있는지 몰랐는데,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거고, 강사는 어떻게 돼야 하는지도 몰랐는데, 강연 요청이 와서 하다 보니 강사가 된 거다. 그러면서 이곳에 점점 내 자리가 만들어져 갔다. 강연과 진행은 상당히 다른 영역이다. 좋은 진행자라도 1시간이 넘는 강연을 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고, 강연을 2~3시간씩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진행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것이다. (뭔가 굉장히 풀어쓴 내 자랑 같은데… 그런 의도는 아님)

 

우리의 삶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인 듯하다. 그런데 그 자리를 내가 임의적으로 정해놓고 그 자리에 가냐, 못가냐로 인생을 성패를 논하며 마음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때가 되면 어련히 사람들이 내 자리를 만들어준다. 내가 돈이 되고, 필요한데 안 쓸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만드는 것 아니라 알아서 만들어 주니 억지 부리고 괜한 에너지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거다. 그 선택들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나아가면 된다. 그 끝에 내 자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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