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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나는 사실 수줍음이 많고 실패하는 것이 두려운 아이였다. 그래서 114에 전화를 못 했다. 당시엔 어딘가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서는 114에 전화해서 번호를 물어봐야 했는데, 어린이다 보니 정확한 명칭을 모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어버버'하며 물어보면 안내원이 그 번호가 없다고 하고, 그럼 다시 묻지 않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런 성격을 고치고 싶어서, 고등학교 갔을 때 연극반을 들어갔다. 부모님께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연극반을 든 것도 불만이었지만, 왜 내가 연극반에 들어갔느냐가 더 의문이었다. 나는 연극을 하면서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까지 17년을 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공부, 기초 체육 정도였는데 여기선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줄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거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부모님께 코미디언 시험을 보겠다고 말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황당해 하셨다. 연극을 했으니 연기자가 되겠다면 이해하겠는데, 코미디언이라니 정말 예상 밖의 선택이었는가 보다. 그 후 내가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될 때는 더 당황하셨다. 어머니의 마음속엔 내가 여전히 슈퍼스타였으니까.
그 후에 산후우울증 극복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대박이 나서 책이 나오고 작가가 됐다. 이때는 공부를 잘했던 우리 형이 더 놀랬다. 맨날 공부 못한다고 혼나기나 했던 동생의 작가 데뷔가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세 번째 책을 쓰고 있고, 강연자로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다. 게다가 지금 내 삶에 상당히 만족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런 어릴 적 회상을 하게 된 건, 유튜브에서 교육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다. 아이들과 소통의 문제를 겪고 있는 가정이 여럿 나왔다. 그 안의 부모님들의 말에는 내가 어릴 때 들었던 말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자녀에 대한 인터뷰 중에 ‘이렇게 하면 아이에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잔소리를 안 해요.’ 라고 한 말이 가슴이 많이 남았다.
미래가 뻔히 보인다라… 우리 어머니는 남대문 새벽 시장에서 10년 넘게 수많은 손님을 대하면서 갈고닦은 촉이 남다른 분이셨다.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씀도 ‘엄마는 다 알아!’였을 정도였다. 그런 어머니도 내 미래를 보지 못하셨다. 전혀 예측도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본인의 미래를 모르지 않나? 내 자식이 망할까 봐 두렵고, 소위 대박이 났으면 하는 건 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지식과 경험치만큼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부모라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의 지금 경험치로 상상하고 제한하면 안 된다. 그것이 아이들의 하고자 하는 의욕을 꺾어서 정말 망하게 할 수 있다.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장점들을 찾아주고, 응원해서 강점으로 바꿔주고 재미가 생기게 해서 의욕이 차오르게 해야 된다.
그럼 알아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내 45년 경험 중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대박이 났다는 사람을 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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