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최근에 신묘한 개그를 보게 됐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조나단의 개그이다. 흑인인 그는 암살 개그를 하는데, 이런 식이다. 기분 좋은 표정으로 친구에게 '나는 어떤 친구야?' 하고 묻는다. 그럼 친구가 ‘조나단은 상당히 밝은 친구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어 ‘뭐? 그럼 내가 어두운 줄 알았어요?’ 그러면 상대는 당황해서, 아니라고 진땀을 흘리며 난처해 죽겠어 하는 표정을 짓는데 그 상황을 보고 웃는다.
이 코미디는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활용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코미디의 진면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우리 사회는 을이 갑을 이길 수 없지 않나? 그런데 코미디는 을이 갑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다. 뭔가 역전이 되어있는 세상이랄까? 웃기게 생기고, 뚱뚱한 것은 축복이다. 아무튼 나는 이런 세상에서 더없이 귀한 기술을 배웠다. 을인데 갑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보통 을이나 병으로 살아간다. 나 역시 비슷한 위치에서 쭉 성장했다. 집이 부자도 아니었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었고, 싸움을 잘 했던 것도 아니라서 을, 병으로 눈치 보며 쫄아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코미디언이 되고 인기가 생기면서 갑의 느낌을 잠깐 느껴본 적이 있었지만 금방 다시 을로 내려왔다.
심지어 을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병, 정까지 내려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갑으로 살고 있다. 실제 갑이 됐다는 것이 아니라 내 기분이, 내가 임하는 자세가 갑이 됐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 정도 위치의 사람이 갑처럼 지낸다는 것이 상당히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
갑처럼 지내는 방법을 알게 된 순간은 매니저 없이 혼자 프리랜서로 일할 때다. 사실 연예인들은 매니저가 있으면 자신의 몸값을 정확히 모를 수 있다. 자신이 얼마라고 협상하는 것이 좀 우습지 않은가?! 그래서 매니저가 그런 협상을 거의 다 하는데, 그렇다 보니 얼마를 어느 정도 부르는 것이 적정선인지를 모르게 되는 거다. 눈치게임처럼 주변의 비슷한 수준의 연예인과 맞춰서 몸값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연예인의 몸값을 묻는 것도 불문율이라 알기는 쉽지 않다.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내 몸값이 시장이 생각하는 가격과 비슷해야 일을 할 수 있다. 한번은 돈이 궁해서 과하게 불렀는데 일이 성사가 됐다. 그런데 내 실력보다 많이 금액을 받다 보니 부담감이 생기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평소보다 더 못 했다. 돈의 무게에 눌린 것이다. 마치 사기를 친 것처럼 작아졌다.
그다음엔 지인의 행사 요청으로 저렴하게 일을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엔 실수를 해도 부담도 없었고, 내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주최 측도 너무 감사해하며 날 대접해 주었다. 그 순간 갑의 기분이 됐다. 이거다. 내 실력보다 약간 낮춰서 받으면 갑처럼 일할 수 있다. 약간 밑지는 장사를 하는 거다. 많이 손해 보라는 것이 아니다. 약간만 손해를 보면 갑이 될 수 있으니 오히려 득이 더 많다.
난 이런 마음으로 가정에서도 생활한다. 내가 약간 손해를 본다는 마음으로 집안 일과 육아를 하다 보면 힘은 좀 들어도 갑이 될 수 있다. 내가 화가 나서 지금까지 해주던 서비스를 안 해준다고 하면 다들 자신의 손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아무도 날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일이던 감정이던 돈이던, 약간만 상대에게 밑지고 살아보자. 물론 그러기 위해선 내 자신의 능력치를 정확하게 아는 것도 중요하겠다. 그럼 우리도 갑이 될 수 있다.
[ⓒ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