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조력 사망 헌법 소원 정식 심판하기로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불치병에 걸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게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지난달 5일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와 아내가 동반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사실이 밝혀지며 우리 사회에도 존엄할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70년을 해로한 전 총리와 부인의 나이는 향년 93세였으며 부부 모두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 부부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종교의 교리를 따르는 대신 삶의 자기결정권을 선택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부터 △환자의 자발적 요청 △견디기 힘든 고통 수반 △호전 가능성 없음 △두 명 이상의 의사에게 확인 등의 조건을 충족할 경우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2022년에는 전체 사망자의 약 5%인 8720명이 안락사로 죽음을 맞았다. 부부 동반 안락사는 흔치 않지만 2020년 13쌍, 2021년 16쌍, 2022년 29쌍 등으로 그 수가 늘고 있다.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의사조력자살, 소극적 안락사 등으로 구분된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물을 직접 투약하는 경우를 적극적 안락사, 의사가 치사량의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하거나 투약하는 것을 의사조력자살이라 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와 같은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적극적 안락사는 네덜란드와 벨기에·스페인·룩셈부르크 등에서, 의사조력자살은 캐나다·스위스·독일·미국 일부 주·오스트리아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되면서 소극적 안락사인 연명 치료 중단만 가능한 상태다. 이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혈액 투석·항암제 투여·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해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나 영양분·물·산소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은 안락사의 범위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21년 서울대병원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6.4%가 적극적 안락사 및 의사 조력 자살 합법화에 찬성했다. 찬성하는 이유로는 △남은 삶의 무의미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고통의 경감 등을 꼽았다.
2022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에 의해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된 바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 법안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에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환자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이명식 씨가 한국존엄사협회, 착한법만드는사람들과 함께 조력 사망의 합법화를 요구하는 헌법 소원을 냈다. 척수염으로 하반신이 마비됐고 매일 극심한 경련과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씨는 조력 사망이 제도화되지 않아 자신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과 2018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각하했지만, 이번에는 받아들여 정식으로 심판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