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s 시선] 임신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

김보미 엄마기자 / 2023-01-09 11:10:35
전체 임신 중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48%...이중 61%가 임신 중절로 이어져
의도하지 않은 임신 줄이려면 피임·젠더 평등·국가 개발 등 필요
[맘스커리어=김보미 엄마기자] # 3년 전 결혼한 34세 A씨.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A씨는 아직 아이 생각이 없지만 시댁에 갈 때마다 "나이도 있는데 얼른 아이 낳아야지" "결혼을 했으면 예쁜 손주를 낳아 부모에게 효도할 줄도 알아야지" 등의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가 잘 들어선다는 한약을 지어주고 어느 병원이 유명하니 가보라고 추천해 주는 등 오매불망 아이를 바라는 시댁 식구들 때문에 A씨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 9살 외동딸을 키우고 있는 37세 B씨. 딸과 함께 다니면 이웃 어르신이나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딸 하나야? 하나는 외로워서 못써. 둘은 있어야지. 늦기 전에 얼른 낳아요" 등의 핀잔 섞인 조언을 종종 듣곤 한다. 그럴 때마다 B씨는 웃으며 넘기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다. "저희 가족계획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내려간다.     

출산 시기나 자녀의 수를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선택할 권리는 신체적 자율성의 권리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국가도 여성에게 임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에는 아직도 자신의 성과 임신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여성들이 많이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지난해 7월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2 세계인구현황보고서'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의 주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의도하지 않은 임신으로 고통받는 외면당한 사람들을 위한 행동'으로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겼다.

여기서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란 자녀를 더 낳을 계획이 없었던 여성의 임신, 또는 생각보다 일찍 이루어진 원치 않은 시기의 임신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 세계에서는 매년 평균 1억 2100만 건, 하루 33만 1000건의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발생했다. 전체 임신 중 48%가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었고, 그중 61%가 임신 중절로 이어졌다.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할 가능성은 젠더 평등 지수가 낮은 국가에서, 개발도상국과 농촌에서, 극빈층 소득 수준의 가정에서 더 높았다. 

의도하지 않은 임신은 여성에게 경제적 부담뿐만 아니라 정신적·신체적 위험을 야기한다. 2017년 미국 연구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의도하지 않는 임신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최대 25% 낮추며,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선택에 의해 임신한 여성보다 산후우울증을 앓을 가능성이 1.53배 높다. 특히, 임신 중절을 원하지만 받을 수 없는 여성의 경우 부정적인 심리적 결과를 겪을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줄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물론 안전한 피임법에 대한 인식 수준과 피임 도구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젠더 평등 실현이다. 

양질의 교육을 통해 소녀와 여성들이 스스로 자율성과 권한을 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자신의 역할이 재생산과 모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더 많은 정규교육을 받은 여성일수록 자신의 인생에서 더 큰 행위 주체성을 갖게 된다.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 수준도 의도하지 않은 임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가의 개발 수준이 높을수록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적게 발생하는데, 이는 피임에 관련된 서비스를 더 폭넓게 이용할 수 있고 문화적 장벽이 적어 여성이 자신의 재생산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임신이 의도한 임신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여성이 행위 주체성을 가지고 임신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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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미 엄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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