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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지금은 안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코미디언이 되기 전엔 대학로에서 코미디언 지망생들이 공연 전에 자신의 공연 티켓을 길에서 팔았었다. 살면서 호객을 한 번쯤 당해봐서 알겠지만 호객이라는 것이 무관심 수준이 아니라 피해서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가. 그러니 호객을 하는 입장에선 나를 피하고 싶은 사람을 잡아서 나의 이야기를 듣게 만들고, 결과적으론 내 편으로 바꿔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거다. 그래서 나름 전략이 필요하다. 단지 ‘공연 보러 오세요~’ 수준으론 사람의 가던 걸음을 늦추지도 못한다.
당시에 나와 호객 경쟁을 펼쳤던 사람이 정형돈이었다. 어느 날 내가 비교적 반반한 외모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형돈이 형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트럼프 카드를 꺼냈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확실히 묘수였다. 사람들이 공연을 보던 안 보던 그 마술을 보기 위해 형돈이 형 앞에 섰다. 하지만 좀처럼 그 사람들이 티켓팅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술만 보고 생각 좀 더 해보겠다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형돈이 형을 지나 앞쪽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래서 형돈이형의 마술을 다 보고 그냥 가던 ‘생각 좀 더 해보겠다’는 사람들을 다시 잡아서 우리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결국엔 티켓팅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재주는 형돈이 부리고 돈은 내가 챙긴 격이랄까?
아무튼 앞서 호객이라고 표현했지만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영업이고, 더 넓은 의미로 장사라 할 수 있는데, 살다 보니 우리의 삶 전체가 일종의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인드로 접근했더니 육아도 편해졌고, 부부관계도 더 좋아졌다.
일단 장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이익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판단을 빠르게 잘 해야 한다. 어떤 이익을 남겨야 할까? 감정의 이익을 남겨야 한다. 나는 행복한 시간을 감정의 흑자, 불행한 시간을 적자라 한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려면 흑자폭이 커지는 판단을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괌에 여행 갔을 때 이야기다. 둘째가 수영을 한참 하고 점심을 먹으려는 찰나에 잠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잽싸게 컨시어지로 가서 유모차를 빌려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영장과 컨시어지의 거리가 좀 있다 보니 아내의 예상보다 내가 늦게 돌아온 것 같았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고 짜증 섞인 말을 했다. 아내는 잠들어서 더 무거워진 둘째를 긴 시간 안고 있어서 짜증이 났던 거다. 나도 마음이 꿍해졌다. 그런데 이대로 있으면 장사가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사실 난 유모차를 '짜잔' 하고 가져오면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아차 싶은 느낌을 받았는지 내게 사과를 해주었고 우린 악수하고 화해를 했다. 장사가 잘 됐다. 만약 내가 꿍한 채로 있었고, 아내도 빨리 사과를 하지 않았다면 어색한 시간만큼 적자의 폭이 상당히 커졌을 것이다. 여행까지 왔는데 '폭망'이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을 먹는데, 입 짧은 첫째가 시킨 햄버거에 야채가 많다며 안 먹겠다고 하는 거다. 이때 많은 부모들이 야채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겁을 주면서까지 먹이려고 하는데, 우린 그렇게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 야채 안 먹어도 안 죽는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영양분을 채울 수 있고, 결국 배가 고프면 뭐든 먹게 되어 있다. 굳이 그걸 먹이려고 화내고, 억지로 먹어서 기분 상하고, 그 기분 상한 것을 보고 다시 화나는 이런 식의 장사를 하면 안 된다는 거다. 이쯤 되니 우리 삶과 장사 같다는 말이 와닿지 않나? 여기에 나는 장사의 신이다를 쓴 은현장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가족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사가 잘 되면 재미가 있듯이 감정도 흑자가 계속되면 사는 게 퍽 재미가 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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