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s 서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김보미 엄마기자 / 2025-12-04 11:10:01
기후 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의생활 이야기
이소연 작가, 새 옷 없이도 빛나는 삶의 기술 전해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패션 산업은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매년 수십억 벌의 옷이 생산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 염색 폐수, 섬유 쓰레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 정도가 의류의 생산·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저렴한 옷이 지천에 널려 있는 요즘, 사람들은 옷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린다. 그러나 값싼 옷의 이면에는 환경 파괴뿐 아니라 노동 착취와 인권 침해 등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소연 작가의 저서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는 이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우리가 무심코 입는 옷이 지구와 사회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사진=돌고래]

 

어릴 적 패션 디자이너를 꿈꿀 정도로 옷을 좋아했던 이소연 작가는 2019년 미국의 한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1.5달러짜리 오리털 패딩의 가격에 의문이 생겨 알아본 끝에 자신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던 옷이라는 날개가 가짜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그녀는 패스트패션 산업에 숨겨진 충격적인 이면을 알게 됐고 그 이후 새 옷을 사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제로 웨이스트 의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당시 환율로 따지면 단돈 2000원도 되지 않던 오리털 패딩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값이 싸고 구하기도 쉬운 합성섬유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합성섬유는 석유, 석탄 등에서 추출한 고분자물질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든 섬유로 우리에게 친숙한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등이 이에 속한다.

오늘날 생산되는 섬유의 약 70%는 합성섬유다. 하지만 합성섬유는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보다 세 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썩지 않는 쓰레기를 남긴다. 합성섬유가 자연 분해되려면 길게는 수백 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천연섬유는 환경을 덜 오염시키지 않을까. 의외로 천연섬유 역시 방대한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엄청난 살충제와 물을 사용해 생태계를 위협한다.

두 번째 이유는 값싼 노동력 착취로 인건비를 줄였기 때문이다.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난 라나플라자 붕괴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패스트패션 의류 납품 공장에서 시급 260원을 받고 일하던 노동자들은 건물에 금이 갔는데도 불구하고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일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1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십 대 중반의 소녀들이었다고 한다.

셋째,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부추기는 할인 전략이다. 쉬인과 같은 중국의 의류 플랫폼은 초저가 제품을 무기로 소비자들을 끌어모은 뒤 실제 수익은 옷값이 아니라 소비 데이터와 광고비에서 얻는다. 판매 과정에서 축적된 소비자의 취향, 구매 시기, 선호 색상 같은 정보는 정밀한 알고리즘 광고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새로운 소비를 부추기는 구조다.

여기에 매년 '올해의 색'을 지정해 전 세계 패션 시장을 움직이는 방식도 반복된다. 특정 색상이 트렌드로 선언되면 소비자는 지난해 옷을 촌스럽게 느끼며 새 옷을 사도록 유도된다. 결국 옷이 유행 주기에 맞춰 사고 버려야 하는 일회용품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또 다른 문제인 값싼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쉴 새 없이 돌아가야 하는 의류 염색 공장은 폐수를 강과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내는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화 비용을 마련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들은 강물 색만 봐도 곧 유행할 의류의 색을 알 수 있다고 푸념한다. 값싼 옷을 만들기 위해 치러지는 환경 비용은 기업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생태계가 떠안는 셈이다.

부담 없는 의류 폐기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재활용을 위해 초록색 의류 수거함에 버린 옷의 95%는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하지만 이 옷들은 개발도상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가나 아크라의 칸타만토 시장에는 매주 1500만 벌의 중고 의류가 쏟아지는데 이중 절반은 쓰레기로 버려진다. 방치된 옷더미로 쓰레기 산이 형성된 곳에 소들이 올라가 의류를 뜯어 먹고 죽는 일도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3위의 헌 옷 수출국으로 사실상 의류 쓰레기를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이소연 작가는 패스트패션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명품, 그린워싱, 빈티지 역시 맹목적으로 소비될 경우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명품 브랜드는 한정성과 희소성을 내세워 과잉 소비를 부추기고, 의류에 친환경 소재나 윤리적 인증을 내건 일부 기업도 실제로는 이미지 세탁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빈티지 의류 또한 지나친 유행화와 가격 거품으로 또 다른 소비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태도다.

이를 위해 그녀는 일상에서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안했다. 먼저 새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주변에 선언한다. 주변의 응원과 견제가 작은 유혹을 이겨내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족의 옷장 들여다보기, 친구와 옷 교환하기, 묵은 옷 다시 보기 등을 제안했다. 여기에 더해 옷 교환 모임인 21% 파티 참여, 중고 거래 이용도 불필요한 생산을 줄이고 동시에 새 옷을 입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추천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고르고 입는 옷 한 벌이 지구와 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이소연 작가는 지난해 9월 열린 서울학부모지원센터의 강의를 통해 "사람들은 의외로 매일 입는 옷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몸에 좋은 먹거리를 구매할 때처럼 옷을 살 때도 꼼꼼하게 따져 보고 내가 사는 이 옷이 지구와 생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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