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 처벌 못하던 시대 끝나

김혜원 엄마기자 / 2026-01-16 13:10:01
‘가족이라서’ 면죄부 제동…피해자 권리 보호 강화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는 쉽사리 아물기 어렵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에 사랑이 깊은 만큼 상처도 깊게 남는다. 그러나 그동안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은 ‘가정사’로 치부되며 외부의 개입이나 제도적 구제가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아이가 길에서 맞더라도 부모가 '훈육'이라고 하면 문제 삼지 못했다. 부부가 크게 다퉈도 '집안일'이라는 이유로 주변이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서야 가정폭력과 아동학대가 엄연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고, 처벌과 보호 조치가 강화됐다. 


이 같은 제도적 변화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 피해’ 영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금전적 피해를 입고도 처벌이나 피해 회복이 어려웠던 사례가 반복되면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개그맨 박수홍 씨 사건은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박 씨의 친형 부부는 그의 돈 약 6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박 씨의 아버지가 “자금 관리는 내가 했으니 횡령의 주체도 본인”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친족 간 재산범죄가 처벌에서 예외로 취급된 제도를 악용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형법에는 이른바 ‘친족상도례’가 규정돼 있다. 일정한 친족 관계에서 발생한 절도·사기·횡령 등 일부 재산범죄는 예외적으로 처벌을 제한하거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취지는 가족 내부 문제를 형사 처벌로까지 확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하자는 데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가족이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비판이 거셌다. 특히 부모·자식 등 직계혈족 사이에서 발생한 재산 범죄는 처벌이 제한되거나 형이 면제되기도 해, 피해자가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운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이 같은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장기간 유지되어 온 조항으로,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지속돼 왔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규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입법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헌재는 “가족 간 재산 피해를 본 피해자가 적절한 형벌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취지로 판단하며, 법 조항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국가의 보호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생긴다면, 형사법의 보호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후 정부는 친족상도례를 손보는 방향으로 형법 개정을 추진해 왔고, 국회에서도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졌다.

개정 논의의 핵심은 ‘친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에서 예외가 되는 구조’를 줄이고,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해 처벌 가능성을 확대하는 데 있다. 기존에는 친족 범위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리는 구조였으나, 앞으로는 친족 간 재산범죄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고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게 됐다. 즉 가족이라는 관계가 자동으로 면책 사유가 되기보다, 피해자가 원할 경우 형사 절차로 이어질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강화한 셈이다. 

 

▲ 박수홍 씨의 아내 김다예 씨가 올린 sns 게시물[사진=김다예 인스타그램 갈무리]

가족 관계의 허점을 이용한 불합리한 사례는 상속 분야에서도 반복돼 왔다. 자녀를 제대로 부양하지 않았거나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지냈던 부모가 자녀가 사망하자 뒤늦게 나타나 보상금이나 보험금, 상속 재산을 요구하는 일이 잇따르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국가적 재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돌보지 않았던 상속인이 갑자기 나타나 유족급여나 보험금을 받아가는 반면, 실제로 피해자를 보살핀 사람은 법적 상속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행 민법은 원칙적으로 혈연 관계에 따라 상속권을 인정해 왔기 때문에, ‘부양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상속권이 주어진다’는 불합리성이 반복돼 왔다.


이 문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 중 하나가 가수 구하라 씨 사례다. 구 씨가 세상을 떠난 뒤 20여 년간 연락이 두절됐던 친모가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확산됐다. “양육과 부양의 책임은 외면하고, 권리만 요구한다”는 비판이 커지며 상속 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결국 헌법재판소 판단 이후 민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됐고, ‘상속권 상실제도’가 도입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민법 제1004조의2(상속권 상실) 조항이 신설됐다. 이 제도는 상속인이 될 직계존속 등이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하거나, 피상속인 또는 그 배우자·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경우,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등에 대해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혈연 관계만으로 상속권이 자동 부여되는 구조가 아니라, 상속인의 책임과 의무 이행 여부를 기준으로 상속권을 제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다만 이 조항의 적용 시점은 부칙에 따라 제한된다. 개정된 상속권 상실제도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일정 시점부터 적용되도록 규정돼 있으며, 공식 시행일은 올해 1월 1일부터다. 다만 법 부칙에 따라 헌법재판소 결정일 이후인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에만 적용되는 등, 소급 적용 범위에는 제한이 있다. 따라서 제도 도입 이후에도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어떤 사례가 상속권 상실로 인정될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축적될 필요가 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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