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s 문화생활] 집시들이 들려주는 한 가족의 이야기...연극 '거짓말쟁이 마녀가 돌아왔다'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 2025-12-25 10:00:18
이 시대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질문 던져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창작극단 이야기양동이가 주최·주관한 청소년극 '거짓말쟁이 마녀가 돌아왔다'가 지난 18~21일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됐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공연예술 지원 사업의 선정작이기도 한 이 연극은 한 가족의 이야기에 춤 플라멩코를 결합한 무대를 통해 오늘날 가족 형태의 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공연은 일반적인 연극과는 조금 다르게 시작했다. 공연 시간이 되기 전부터 무대 한편에서 라이브 음악이 연주되고 무대 위에는 세 명의 집시가 등장해 여유롭게 몸을 풀고 객석을 넘나들며 관객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이 익숙해질 무렵 객석의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됐다.
세 명의 배우는 플라멩코를 추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집시이자 극의 해설자이며 이야기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발을 구르고 몸을 움직이며 리듬을 쪼개는 플라멩코 춤사위는 극 전반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다.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곧 고등학생이 되는 딸 '하은'이 있다. 아빠와 함께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을 살아가던 하은의 삶은 5년 전 이혼하고 가족을 떠났던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 한 통으로 급격히 흔들린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냉정하게 떠났던 엄마가 어느 날 '집에 가는 중. 현관 비밀번호 알려줘'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더니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은 가족들의 묵은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갈등을 유발하지만 극은 옳고 그름을 단정하지 않고 저마다의 입장을 대변한다. 댄서인 하은의 엄마는 온 세상을 누비며 자유롭고 화려하게 사는 예술가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하은의 눈에 엄마는 그저 안정된 삶을 뒤흔드는 거짓말쟁이 마녀일 뿐이다.
엄마가 떠난 뒤에도, 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에도 묵묵히 집을 지키며 일상을 살아내고 있던 하은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원한다. 아빠는 그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을 하며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으로 엄마와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을 보여준다.
세 명의 집시는 각기 다른 입장을 대변한다. "자유롭고 화려한 마녀의 삶이란... 정말 멋져!", "그냥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 수는 없어?",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라고 외치는 집시들의 목소리는 곧 가족 구성원 각각의 내면을 대신해 보여주는 셈이다.
이야기에 더해진 움직임 전문가 탁호영의 연출과 플라멩코 전문가 손수아의 안무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박해받았던 무어인과 유대계 스페인 사람들의 한과 눈물에 뿌리를 두고 있는 플라멩코는 강렬한 발 구름 동작과 특유의 율동감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하은의 분노와 자유를 갈망하는 엄마의 감정을 깊이 있게 표현해 낸다. 여기에 첼로와 기타의 라이브 연주 역시 장면마다 몰입감을 더한다.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객석에서는 웃음소리와 훌쩍이는 소리가 번갈아 가며 들렸다. 청소년들에게는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 부모의 선택이, 어른들에게는 한때 꿈을 좇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며 극은 '당신이 생각하는 이 가족을 이상적인 결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강주성 작가는 "이 이야기는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청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요즘 가족의 이야기, 각각의 삶이 중요하지만 가족임을 지키고 싶은 세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 준비한 이야기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분들께 위안이 되길, 가족끼리 서로 한 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연극을 만들었다"라고 전했다.
21일 공연을 본 한 관객은 "우리 주위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참신한 구성으로 풀어낸 공연이었다"라며 "세 배우의 훌륭한 연기 덕분에 극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고 끝난 후에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인 것 같다. 함께 관람한 자녀와도 요즘 시대의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진중한 대화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맘스커리어 /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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