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레벨테스트 금지… ‘4세 고시’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 2025-12-24 11:10:46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4세·7세 고시는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의 인권 문제입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15일 CBS 라디오 ‘최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유아 대상 영어학원 입학시험을 금지하는 학원법 개정안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조기 사교육 경쟁을 막고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다만 법안 통과 이후에도 현장에서는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을지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8일 전체회의를 열고 학원의 설립·운영자가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의 유아를 모집할 때 수준별 반 편성을 목적으로 한 시험이나 평가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학원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위반 시 학원은 영업정지 처분이나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다만 유아가 학원에 등록한 이후에는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교육활동 지원을 위한 관찰이나 면담은 허용된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시행령 제정 절차를 거칠 경우 이르면 내년 6월경 현장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은 이번 개정안이 조기 사교육을 억제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규제의 빈틈을 지적했다. 사걱세는 관찰·면담 방식이 사실상 구술 평가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으며 “읽기·쓰기 능력을 어떤 방식으로 요구하느냐에 따라 관찰·면담이 구술고사처럼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경우 인권침해 수준의 과도한 선행학습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개정안에 유아 대상 학원의 교습 내용 자체를 규제하는 조항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보완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술 레벨테스트가 가능하게 돼 있다”며 “법안의 구멍이 클 경우 유아 사교육 시장의 과열을 막고자 했던 본래 취지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가 입법을 통해 이 부분을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했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 입학시험을 금지하는 법안을 두고 일각에서는 난데없는 규제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기교육 경쟁이 아이들의 삶과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문제의식이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손성은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4세 고시’ 현상을 언급하며 “유명 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보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과외까지 받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20년간 아이들을 진료해 온 그는 “부모들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 속에서 경쟁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 전문의는 “너무 이른 경쟁은 오히려 공부에 대한 거부감을 키울 수 있다”며 “아이들이 압박을 받으면 작은 시험에도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이는 뇌 신경계 발달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마음을 다치게 하고 부모와의 관계까지 해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어릴 때는 보고 듣고 만지고 움직이는 다양한 감각 경험이 중요한데, 아이를 앉혀 놓고 시각적 자극만 주는 교육은 뇌 발달 측면에서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기교육 경쟁이 영유아의 정신건강 문제를 넘어 의료 영역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많이 처방된 ADHD 치료제인 콘서타OROS서방정은 5세 이하 소아에 대해 유효성과 안전성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은 상태다. 메디키넷리타드캡슐과 페니드정은 6세 이상부터 사용하도록 돼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 의원에서 보호자 요청에 따라 처방이 이뤄지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조기교육 경쟁 속에서 집중력 개선에 대한 기대가 약물 사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학원법 개정안은 유아 대상 레벨테스트를 제도적으로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다만 등록 이후 허용되는 관찰·면담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유아 대상 선행 교습과 과도한 경쟁 구조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어린 나이부터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이 불안을 겪다 정신건강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이번 제도와 법이 현장에서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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