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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예인이자 작가 이정수 |
[맘스커리어=이정수 작가] 연예인이 좋은 기획사를 들어가면 기회를 더 많이 받고, 스타가 될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많은 지망생들이 소속사에 들어가려고 그리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미디언은 조금 다르다. 다른 연예인들은 될성부른 나무를 기획사에서 골라서 체계적으로 키워내는 반면 코미디언은 재능이 어느 정도 꽃을 피웠을 때에 기획사에서 연락이 온다. 그래서 그때까지 자신이 알아서 잘 커야 한다.
그러니 내가 지망생 당시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방송국 공채가 되는 것이었다. 내 경우엔 공연장이 있던 스마일매니아라는 회사에 심적으로 계약된 상태로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바로 공채가 되었고 계약서도 쓰기 전에 스타가 됐다. 그랬더니 유명 기획사에서 접촉을 시도해왔다. 앞으로 엠씨도하고 연기도 하고, 가수도 할 수 있는 연예인을 찾고 있는데,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의상 스마일매니아와 계약을 했다. 그렇게 계약을 하고 시간이 흘러 개콘 이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 뜻대로 잘 진행이 되지 않았다. 예능도 아니고 연기도 아니고. 그러니 예전에 접촉해왔던 그 기획사가 떠오르면서 푸념을 했었다.
“아… 내가 누난 내 여자니까를 부를 수 있었는데…”
아무튼 이런 마음이 들고나니 다른 회사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회사를 가면 일이 더 잘 풀리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대형 스타 mc가 있는 1인 기획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내 실력이 예상보다 별로였는지 다른 가수 회사로 나를 위탁했다. 거기서부터 점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기회의 간격도 벌어졌다. 또다시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네 곳을 더 옮겨 다녔고, 그 즈음부터는 기회랄 것이 없이, 소모적 일만 하다가 기획사 철새 생활을 끝내게 됐다.
당시엔 기획사만 잘 만나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안이하고 무지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실력이 없기에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을 몰랐던 거다. 그런데 여기에 내 기회가 없어진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그걸 너무 나중에 알았다.
내가 적이 너무 많았다는 거다. 내가 떠나온 회사가 다 나의 적이 된 거다. 나를 보낸 회사들은 더 이상 날 위해 좋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나빠서가 절대 아니다. 당연한 거다. 회사에 대체 인력이 있고, 그들에게 일을 잡아줘야 하는데, 관계도 없는 경쟁자를 위해 굳이 좋은 소리를 할 필요가 있겠나? 그러니까 나는 방송가에 내가 옮겨 다닌 회사만큼 날 반대하는 적을 깔았던 것이다. 이러니 일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코미디언이 됐을 때, 선배들이 농반진반으로 ‘내가 너를 스타로 만들 수는 없어도 망하게는 할 수 있다!’고 했었다. 참으로 좀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지만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워낙 말이 많은 곳인데, 거기서 말만 살짝 보태도 밥그릇 날아가는 것은 쉬우니까 말이다. 게다가 누군가가 잘 되라고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어도, 죽으라고 목숨을 거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주변에 적을 줄여야 한다.
이걸 깨닫고 나서 애매한 인간관계는 굳이 만들지 않고, 한번 만든 인연은 꾸준히 깊이 있게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의도치 않게 농담으로라도 상처 준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사과를 하고, 충분히 약을 발라주고 관리해서 그 사람들이 내게 같은 상처를 주려는 마음을 먹지 않게 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독일 격언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처럼 어쩔 수 없이 인연을 끝내려고 할 때도, 설령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그 마지막 장면이 서로에게 추억이 될 수 있게 마무리를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했더니 확실히 주변에 적이 줄어들고 평판도 좋아지면서 일이 많아졌다. 쓸데없이 핸드폰에 인맥이랍시고 수천 명의 전화번호를 넣으며 애매한 아군만 늘리지 말고 적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면 좋겠다. 적이 줄면 내 수명은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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