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홍시처럼 익어가는 아버지의 사랑 '진심(眞心) 아버지를 읽다 展'을 관람하고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yskwoori88@gmail.com | 2025-01-14 13:10:24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 경영학 박사

[맘스커리어 =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 경영학 박사]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초겨울 햇살 아래 아파트 화단의 감나무에 달린 홍시 서너 개가 콩새들의 잔치가 되었다.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던가. 남의 것이 더 맛있다고 했던가. 저리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외출하고 돌아온 주인장 까치는 땅을 치며 후회한다.

그랬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나훈아의 '홍시' 노래처럼, 베란다 아래 홍시는 어머니를, 아니 아버지를 더욱 그립게 했다.

지인의 초대로 작년 낙성대 하나님의 교회 '어머니 展'에 이어, 어제 분당 이매동 성전의 '진심(眞心) 아버지를 읽다 展'에서 시간은 마치 맑은 물처럼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사진=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전시관 첫 방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김영수(金永秀)'라는 문패가 나를 맞이했다. 길 영(永)자에 빼어날 수(秀). "아들아, 네가 나보다 더 길게, 더 빼어나게 살기를..." 아버지의 진심이 흠뻑 배인 영수라는 이름. 내 휴대폰 속에도 열일곱 명의 '영수'가 있는, 그토록 평범한 이름이 오늘은 왜 이리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로 '어머니(Mother)'가 꼽히고 Passion, Smile, Love, Eternity가 그 뒤를 이었지만, '아버지(Father)'는 7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아버지들의 사랑이 너무도 조용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도 엄했기 때문이었을까.

역전의 용사, 산업전사의 아버님들, 1964년부터 73년까지 월급 54$로 목숨을 내놓고 월남전을 치른 아버지, 1인당 국민소득 107$였던 그 시절, 중동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석탄을 채굴하던 광부의 아버지들.

허기진 배를 국수 한 그릇으로 달래는 사진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등이 굽어 또래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 친구들이 "할아버지 오신다"며 놀려도, 묵묵히 감내하며 오직 자식들의 내일을 키워내신 아버지.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아픈 자식 위해 수제비누를 만드시던 손길, 말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셨던 아버지의 모습. 파견 광부의 편지 한 장, "오늘도 살아서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글귀, 그리고 11시 55분, 자정 5분 전 마지막 막차를 기다리는 뒷모습.

지난 40여 년간 일터는 달랐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 6시에 나서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던 나의 시간들, 그것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의무였고 책무였으며 80학번 세대까지의 자부심이었다.

괘종시계 앞에서 다시 발길이 멈춘다. 하루 종일 흙에 시달린 어머니의 새벽시간인 자식들 도시락 싸기 위해 아버지가 마련한 거액 5000원의 괘종시계는 장날 소매치기에 날아갔지만, "다치지 않았으면 되었지, 괜찮아" 하시며 다음 장날 더 좋은 시계를 사 오셨다. 교회 종소리보다 맑게 울리던 그 벽시계 소리가 멈춰진 초침과 마주하는 순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부모님을 공양하는 마지막 자칭 효자 세대, 빚을 내서라도 자식 교육만은 포기하지 않으시던 자녀사랑, 그 아버지의 헌신과 열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냈음을 되새기며 전시장을 나섰다.

하늘이 맑고 푸르다. 영하 15도의 한파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붉은 마음을 담은 듯, 침묵 속에 피워낸 사랑의 꽃처럼 오히려 따뜻하고 시원하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아빠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때문에 울먹일세라"

홍시 노래 음미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공부는 잘하고 있느냐"
"밥은 제때 먹고 있느냐"
"너희들 학교 보내는 게 제일 기쁘다"

그토록 부서지게 일하시면서도 자녀들 공부만큼은 포기하지 않으셨던 우리 아버지의 긴 여정이 귀갓길에 다시금 눈가에 아롱거린다.

"보고 싶다, 우리 어머니, 아니 우리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며 이제야 고백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당신의 침묵이 우리의 언어가 되어 영원히 흐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설날에 큰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맘스커리어 / 윤석구 前 우리종합금융 전무 / 경영학 박사 yskwoori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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