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s 시선] 아이들에게까지 번진 혐오 표현...더 늦기 전에 발본색원해야

김보미 엄마기자

bmkim@momscareer.co.kr | 2023-09-07 09:40:51

전세거지·개근거지 등 혐오 표현 생겨나
서로의 다름 존중하는 가정 교육 필요해

[맘스커리어=김보미 엄마기자]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세거지', '개근거지'라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전세로 거주하는 친구들을 '전세거지', 월세로 거주하면 '월거', LH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아이를 '엘사' 등이라 칭하며 같이 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서울경제의 한 기사에는 강남 지역에서 아이들끼리 등기부등본을 떼보고 전세로 살고 있는 아이를 따돌려 결국 그 아이가 이사를 갔다는 기막힌 사연이 실렸다. 강남에 거주하는 학부모 A씨는 "월세·전세·자가 등의 주거 형태에 따라, 또는 아파트의 브랜드별로도 계급이 형성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개근거지'는 학기 중에 체험학습을 내지 않고 학교에 개근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가족여행·해외여행 등의 이유로 체험학습을 내고 학교를 빠지는 것이 흔한 일이 돼버린 요즘, 개근한 아이들이 오히려 놀림거리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개근거지'라는 표현은 개근하는 아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혐오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표현을 접한 학부모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지역의 맘카페에는 "아이들이 저런 표현을 쓴다니 믿기지 않는다", "저런 말을 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 학교 빠진 적 없는데 놀림당할까봐 걱정되네요" 등 다양한 반응이 올라왔다. 

이런 표현은 누가, 왜 만들어 내는 것일까? 어쩌다가 아이들까지 이런 혐오 표현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게 됐을까?
 
흔히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한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아이들이 사용하는 혐오 표현은 부모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확률이 높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 아이와 다른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한다. 영유아 시기에는 아이가 언제 뒤집기를 성공했는지부터 언제 걸음마를 시작했고 말을 했는지, 언제 한글과 숫자를 뗐는지까지 맘카페에 올려가며 남들과 비교하고 불안해한다.

이 같은 양상은 학부모가 되면 한층 더 심해진다. '옆집 아이는 구구단을 벌써 외우더라', '누구는 영어 원서를 줄줄 읽는다더라', '사촌은 경시대회를 나간다더라' 등과 같은 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깎아내리기 일쑤다. 

불안한 부모는 자꾸 아이를 재촉하게 된다. 남들만큼 하기 위해서,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아이를 강하게 밀어붙인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도 남과 비교하며 성장한다. 비교를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남에게서 모자란 부분이 발견되면 그것을 통해 우월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우월감과 특권의식은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전·월셋집에 거주하는 아이들과 자가에 거주하는 아이들, 해외여행을 가본 아이들과 못 가본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고 상스러운 혐오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에는 부모의 언행도 한몫한다. 부모가 "아파트에 사는 친구랑만 놀아라, 전세 사는 친구랑 어울리지 마라"라고 한다면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어떤 기준과 잣대로 친구를 사귀게 될까. 부모의 인성을 아이들은 그대로 답습한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학부모 김씨(37세)는 "아이들이 이런 표현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것에 어른으로서 죄책감을 느낀다"며 "내 아이들이 이런 표현을 알기 전에 이런 단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 맘스커리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