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Chap. 1 “한 아이에게 쏠린 시대 읽기”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clsrn9105@hanmail.net | 2025-12-16 11:10:09
-집중 양육의 구조와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들
[맘스커리어 =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지금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 세대가 자라던 시기와는 전혀 다른 조건 속에서 양육한다는 뜻이다. 부모 세대가 초중고 시절을 보냈던 1980~1990년대에는 형제자매가 셋, 넷인 집이 드물지 않았지만, 지금은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그런 집을 찾기가 어렵다. 많은 가정에서 한두 자녀가 사실상 ‘가족 전체의 투자 대상이자 희망’ 역할을 맡는다.
한두 자녀 가정에서 부모가 양육을 시작할 때 품는 생각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보인다.
“이 아이에게만큼은 부족함을 남기고 싶지 않다.”
“우리가 겪었던 위험과 실패는 이 아이는 피해 갔으면 좋겠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경험하게 해 줘야 한다.”
부모의 이 생각 자체는 건전하고 사랑과 책임감이 분명히 느껴진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모와 아이를 함께 만나 보면, 이 좋은 출발점이 실제 양육 과정에서 과잉 투입, 과잉 개입, 과잉 기대로 바뀌는 지점을 자주 보게 된다.
한두 자녀 구조에서 부모는 아이에 대한 정보를 많이 모으게 된다. 학교와 학원, 입시 제도 변화, 사교육 방식, 친구 관계까지 비교 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살핀다.
“남들 집은 어떻게 하는지”, “이 선택이 나중에 불리하지는 않을지”가 늘 신경 쓰인다.
이때 마음속에 이런 걱정이 자리 잡기 쉽다.
“지금, 이 선택을 잘못하면, 나중에 되돌릴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이 생각이 강해질수록, 양육 안에서 실패를 허용하는 여유는 줄어든다. 그 결과, 아이에게 꼭 필요한 시행착오까지도 위험으로 해석하게 된다. 시험 한 번의 실수, 또래와의 갈등, 일시적인 무기력도 ‘지금 잡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크게 터질 것 같은 신호’로 느껴지기 쉽다.
현장에서 한두 자녀 가정을 여러 해 동안 만나면서 관찰되는 집중 양육의 양상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기대의 기준선이 올라간다.
아이의 현재 상태와 관계없이 “평균 이상은 해야 한다.”, “적어도 주변 아이들보다는 뒤처지면 안 된다”라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깔린다. 이 기준은 성적뿐 아니라 태도, 친구 관계, 진로 준비까지 아이의 여러 영역에 동시에 적용된다.
둘째, 통제와 관리가 일상이 된다.
학습 시간표, 휴대전화 사용 시간, 친구를 만나는 요일과 시간, 진로 관련 활동까지 부모가 직접 계획·점검·조정하는 방식이 강화된다. 아이가 스스로 조절해 보는 기회보다, 부모가 먼저 방향을 정해 주고 확인하는 일이 흔해진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자연스럽게 ‘관리자’에, 아이는 ‘관리받는 대상’에 가까운 위치로 정리된다.
셋째, 실패를 피하는 기술이 먼저 자란다.
시험 실패, 발표 실수, 또래 갈등이 ‘해볼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상황’으로 인식될 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도전 경험이 아니라 회피 전략이 된다.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하다가 잘못되면 어쩌지?”가 먼저 떠오르고, 완벽하게 해낼 확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하면, 아이는 자기 자신을 이렇게 보기 쉽다.
“나는 부모의 기대를 맞춰야 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자기평가 기준은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보다 ‘부모가 보기에는 어떠한지’에 더 많이 기대게 된다.
집중 양육은 단기적으로 분명 효과가 있다. 성적이 오르거나, 이른바 스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발달 심리와 상담 현장에서 축적된 결과들은 한 방향을 가리킨다. 높은 기대와 촘촘한 통제가 오래 지속될수록, 아이의 마음에는 불안, 실패 회피, 자기 비난이 함께 쌓이기 쉽다는 점이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이 성적으론 안 된다.”
이런 메시지가 말과 표정, 한숨과 비교의 언어 속에 반복되면, 아이는 객관적인 수준과 상관없이 ‘나는 늘 조금 모자란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부모가 “사랑해서 하는 말”이라고 설명해도, 아이로서는 ‘잘할 때는 괜찮은 나, 잘 못하면 문제가 되는 나’로 자신을 받아들이기 쉽다.
부모-자녀 관계의 기능도 달라진다. 부모가 늘 지도하고 점검하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아이는 부모를 정서적으로 기대어 볼 수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으로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중요한 순간에 아이는 부모에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실망하게 할까 봐 어려움을 감추거나 줄여서 말하는 쪽을 택할 수 있다.
겉으로는 말 잘 듣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중요한 고민은 부모와 나누지 않는 거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현상이 일부 가정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두 자녀 구조, 저출생, 입시 중심 경쟁, 사교육 시장이라는 한국 사회의 조건 속에서는 어느 집에서든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경향이다.
그래서 누가 잘못했는지를 찾기보다, “이 구조 안에서 부모와 교육자가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를 묻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현장에서 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결국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뿐입니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 마음이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표정이, 아이에게는 사랑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부담과 통제로 들리는가?”
한두 자녀 시대의 집중 양육 구조 속에서 부모와 교육자가 바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변화는 크지 않아 보여도 분명하다. 우선, 아이를 대할 때 결과를 먼저 묻는 질문에서 과정을 묻는 질문으로 조금씩 시도할 수 있다.
“몇 점 받았니?”, “1등 했니?”보다 “준비하면서 뭐가 제일 어려웠니?”
“이번에는 전과 뭐가 달랐니?”와 같은 질문을 늘려 가는 것이다.
또, 아이의 성취를 가족 전체의 성적표처럼 해석하지 않으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의 성적과 활동 결과가 곧바로 부모 자신의 능력, 가정의 수준, 부모로서의 가치와 직결된다고 느끼는 순간, 부모의 불안은 아이를 향한 압박으로 옮겨 붙기 쉽다. 부모 스스로 “이 아이의 인생은 이 아이의 것이고, 나는 옆에서 돕는 역할”이라는 선을 마음속에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문제 행동이 눈에 들어올 때 곧바로 ‘의지 부족’, ‘성격 문제’로 결론 내리지 않고 가정의 일상 구조와 학교·또래 환경을 함께 점검해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하루 생활 리듬, 수면과 식사, 휴식 시간, 학습과 여가의 균형, 학교에서의 관계와 경험을 함께 살펴보면 아이 한 명의 문제로만 보이던 현상이 환경과 구조의 영향을 함께 받은 결과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은 한두 자녀 시대의 양육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지금의 구조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점검하고 조정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자는 제안이다. 같은 사랑이라도, 그 사랑이 아이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그 출발점은 아이를 고치는 데 있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과 질문을 조정하는 데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집중 양육 구조 속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 ‘아이를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다루게 되는 양육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아이를 성과와 결과 중심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기 속도로 자라는 한 사람으로 대하기 위해 부모와 교육자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다뤄 보고자 한다.
맘스커리어 / 박자양 강서교육복지센터 센터장 clsrn91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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