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랑 노는 법 배우러 갑니다”…황혼육아, 함께 배운다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 2025-10-27 11:10:46

조부모 돌봄, 이제 가족의 몫 아닌 사회의 과제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손주가 태어나서 식당 문 닫아요.”

 

워킹맘 A씨는 단골 식당 주인에게서 이 말을 들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지난해 손주가 태어났는데, 며느리가 복직하면서 아이를 봐주게 됐다고 했다. “어린이집 연장반이나 아이돌봄 서비스를 맡기기엔 아직 너무 어려서 직접 돌보기로 했다”는 말에 A씨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요즘 주변에 조부모가 손주를 돌봐주는 경우가 꽤 많다”며 “특히 학군지에서는 양육 강연에도 할머니들이 많이 오신다. 질문도 적극적으로 하시고, 육아 고충을 함께 나누신다”고 전했다.

이처럼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보는 ‘황혼육아 세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조부모가 자연스레 주양육자의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는 이제 한 가정의 선택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세 영아(24~36개월) 8명 중 1명은 조부모 손에서 자라고 있다. ‘서울형 아이돌봄비’ 제도에 참여 중인 친인척형 활동 인원은 지난 5월 기준 5259명으로, 이 가운데 95.8%(5038명)이 조부모였다. 외조부모가 2999명으로 가장 많았고, 참여자의 90% 이상인 4767명이 여성이었다. 연령별로는 60대가 3757명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시는 2023년 9월부터 ‘서울형 아이돌봄비’ 제도를 시행해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등 육아조력자에게 월 30만 원의 돌봄비를 지원하고 있다. 맞벌이, 한부모, 다자녀 등 양육공백이 있는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이 대상이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경기도, 예산군, 홍성군, 천안시 등 여러 지자체가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돌봄비용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양육 공백 가정의 부담을 덜고, 가족 내 돌봄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손자녀를 돌보는 일이 늘면서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모르겠다”는 조부모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에 각 지자체는 조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돌봄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서구는 오는 11월 4일과 11일, 손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조부모를 위한 ‘조부모 손자녀 양육교실’을 운영한다. 강서평생학습관에서 열리는 이번 교육은 그림책 놀이·음악 놀이·미술 놀이 등 실습 중심으로 구성됐다. 강의는 한국보육진흥원 공통부모교육 전문 강사이자 그림책 육아 멘토인 손지수 우리아이행복연구소 대표가 맡는다.


1차 ‘손주랑 친구 되는 그림책 놀이법’에서는 영유아 발달에 맞는 동화 구연법과 포일아트 미술 놀이를, 2차 ‘손주랑 그림책 놀이하며 창의력 키우기’에서는 언어 발달과 감정 표현을 돕는 놀이법을 소개한다. 수강료는 무료이며, 회차별 75명씩 선착순 모집한다.


진교훈 강서구청장은 “조부모의 사랑과 경험은 손자녀 성장의 든든한 자산”이라며 “이번 교육을 통해 최신 육아 정보를 배우고, 손주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가족센터 역시 ‘함께 웃고 소통하는 조부모와 손자녀 이야기: 마음숲 세대공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은 총 4회 과정으로, 숲 체험과 소통법 교육, 관계 형성 워크숍, 테라리움 만들기 등이 진행된다. 조부모의 양육 스트레스 완화와 손자녀와의 정서적 교류 향상을 목표로 한다. 센터 관계자는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성장하는 시간을 통해 세대 간 유대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손주는 사랑스럽지만 돌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기쁨과 보람 속에서도 부담감과 피로가 공존하고, 세대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조부모의 돌봄이 더 이상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부모 돌봄을 “저출생·고령화 사회에서 부모 세대의 경력 단절을 막는 현실적 대안이자 고령층의 사회참여 기회”로 보고 있다.

서울시의 ‘서울형 아이돌봄비’를 비롯해 강서구의 조부모 양육교실, 춘천시의 세대공감 프로그램 등 지자체의 다양한 시도는 모두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것이다. 조부모에게는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부모에게는 일과 양육의 균형을, 아이에게는 안정감을 주는 새로운 돌봄의 형태인 셈이다. ‘조부모의 품’은 이제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돌봄 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다.

 

맘스커리어 / 김혜원 엄마기자 hwkim@momscare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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